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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계곡 장유(張維)가 기생 추향(秋香)에게 바치노라

by taeshik.kim 2019.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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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詩卷) 첫 번째 시의 운자(韻字)에 따라 지어서 오산의 금기 추향에게 주다[次卷首韻 贈鰲山琴妓 秋香]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 


칼춤 추는 기생. 김준근 풍속화에서.



깊은 가을 바람과 이슬 차가운 오경인데 

홍계는 은은한 향기 아직까지 남아있네 

별안간 청준 받고 살포시 보조개 짓더니 

몇번 눈물 훔치고서 오사란 펼쳐 놓았소 

깊은 정 언제나 가야금 봉현에 의탁하니 

누가 짝 이루어 난새 타고 안개속을 날까 

타향 떠돌다 우연히 이룬 분포 자리 

백발 사마는 취해서 서로 얼굴 바라보네 


九秋風露五更寒, 紅桂幽芳尙未殘。

乍對青樽開寶靨, 幾收珠淚展烏闌。

深情每託琴中鳳, 仙侶誰乘霧裡鸞? 

流落偶成湓浦會, 白頭司馬醉相看。


《계곡집(谿谷集)》 권31에 수록됐다. 



전김홍도필평안감사향연도(傳金弘道筆平安監司饗宴圖) (부분). 평안감사가 탄 배를 중심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악대 및 관선(官船)이 늘어서고 뒤로는 관기(官妓. 기생)들이 탄배, 음식을 준비하는 배, 사대부나 아전들이 탄 작은 배가 따른다.



[주석] 


홍계(紅桂) : 망초(莽草)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추향(秋香)의 자(字)가 계영(桂英)이므로 곱게 분단장한 계영을 일컫는 의미로도 쓰였다. 


청준(青尊) : 가득 따른 술잔을 말한다. 술의 별명이 녹의(綠蟻)라 붙은 이름이다. 원문은 ‘青樽’인데 ‘준(尊)’과 준(樽)은 통용하는 글자다. 


오사란(烏絲欄) : ‘오사란(烏絲闌)’으로 쓰기도 한다. 격자(格子)로 묵선(墨線)을 그어 놓은 종이를 말한다.


봉현(鳳絃) : 가야금 줄을 말한다. 


분포(湓浦) :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의 〈비파행(琵琶行)〉 서문에 “구강군(九江郡) 사마(司馬)로 좌천되어 내려간 이듬해 가을, 분포(湓浦) 어구에서 손님을 전송하였는데, 그때 배 안에서 한밤중에 비파 뜯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해설]


앞서 살핀 선조~인조 연간 전라도 장성 땅 관기(官妓)로 시와 가야금, 춤으로 이름을 떨친 추향(秋香)의 시에 계곡 장유가 화운한 시가 이것이다. 추향의 그 시에 화운한 문사만도 계곡만이 아니라 수십 명에 달한다. 추향은 자가 계영(桂英)이다. 


오산(鰲山)은 장성의 별호다. 금기(琴妓)는 가야금을 타는 기생을 이른다. 


장유의 이 시가 널리 알려지면서 추향은 속된 말로 전국구 스타로 떠오르고, 이를 발판으로 상경해 용산에서 조선 최고의 문사들과 교유한다. 어떤 기록에는 당시 왕자가 추향을 사모하는 바람에 다른 문사들이 어쩌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시는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계곡집(谿谷集)》을 번역할 때 이상현 선생이 유려하게 옮겼다. 부족한 능력을 보태서 조금 고쳐 보았다. 아래 이상현 선생 번역도 반드시 보았으면 한다. 


깊은 가을바람 이슬 썰렁한 오경 / 九秋風露五更寒

아직도 배어 나는 상긋한 분 내음새 / 紅桂幽芳尙未殘

언뜻 청준 대하고서 살포시 짓는 보조개여 / 乍對靑樽開寶靨

몇 번 눈물 훔치더니 오란을 펴 놓누나 / 幾收珠淚展烏闌

늘상 정회(情懷) 의탁하는 가야금 봉현(鳳絃) / 深情每託琴中鳳

안개 속의 난새와 어울릴 짝 누구일까 / 仙侶誰乘霧裡鸞

떠돌다가 우연히 이룬 분포의 자리 / 流落偶成湓浦會

백발의 사마 취해서 서로 얼굴 바라보네 / 白頭司馬醉相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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