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삼국 그림 중 많이 나오는 클리셰 소재 중 하나가
한 영감님이 흐르는 물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장면이다.
우리 유산 중에는 강희안의 고사관수도가 유명하지만
사실 관수도만 아니라 관폭도, 폭포를 그린 그림도 비슷한 모티브로 안다.
이런 그림은 중국과 일본에도 꽤 있다.
일단 흐르는 물이나 폭포를 보는 그림은 모두 비슷한 사상적 배경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그림들은 평범한 산수화 같고 실제로 그런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지만
필자가 아는 한 고사관수, 혹은 고사관폭도高士觀瀑圖는 맹자의 다음 구절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孟子曰:“源泉混混,不舍昼夜,盈科而后进,放手四海。有本者如是,是之取尔。苟为无本,七八月之间雨集,沟浍皆盈;其涸也,可立而待也。故声闻过情,君子耻之。”——《孟子·离娄下》
근원이 좋은 샘물은 콸콸 솟아 밤낮을 그치지 않고 흘러가다 웅덩이를 가득 채운 뒤에라야 넘쳐나서 사해로 흘러 드니, 근원이 있는 것이 이와 같아서 이것을 받아 들인 것이다. 만약 근본[샘]이 없으면 여름에 내린 비가 모여 도랑을 모두 채운다 해도 얼마 못가 그만 말라버리고 마니 가만히 서서 기다려도 될 정도다. 따라서 군자는 명성이 실제보다 지나침을 부끄러워한다.
유가에 있어 흐르는 물은 중단없는 전진, 흔들림없는 지향성, 헛된 명성에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을 상징한다 하겠다.
이 말은 나이가 젊었을 때는 그 말의 가치를 쉽게 알기 어렵다.
나이가 들어 인생의 수확기에 들어가 하나씩 둘 씩 거둬 들이기 시작하면 뼈에 와 닿는 부분이 많은 말인데,
그만큼 노년에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이다.
우선 하나씩 채우면서 다 차면 넘어가는 방식으로 서두르지 말고 대충 하는 바 없이 추구해야 한다는 점
물이 흐르듯이 중단없이 끊임없이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
자기 지향과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허명에 집착하게 된다는 점
단 한 구절의 맹자님 말씀이 머리를 치는 부분이 많다 하겠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반백이 되는 시기가 되면 사진이라도 구해 책상 옆에 붙여야 할 그림이 바로 고사관수도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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