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교과서로만 공부했어요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10. 15.
반응형


《서경집전(書經集傳)》은 주희의 제자이며 사위인 채침(蔡沈)이 주석한 것인데, 엉성하여 그대로 보기 어려운 지경이다.

〈우서(虞書) 요전(堯典)〉 첫 머리에

“옛날 요 임금을 상고하건대, 방훈이시니, 공경하고 밝고 문채 나고 생각함이 편안하고 편안하시며 진실로 공손하고 능히 겸양하시어 광채가 사표에 입혀지며 상하에 이르셨다.[曰若稽古帝堯 曰放勳 欽明文思安安 允恭克讓 光被四表 格于上下]”

는 구절이 있다.

언해본도 이 비슷하게 번역되어 있어 보통은 방훈(放勳)을

“방(放)은 지(至)의 뜻이고, 훈(勳)은 공(功)의 뜻이니, 요(堯)의 공업(功業)이 이르지 않은 데가 없음을 찬미한 말”로 풀이한다.




조선 시대 과거시험 답안지에는 이렇게 써야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제요라는 분은 방훈이니[帝堯者,放勳。]”라고 하였고,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과 〈만장 상(萬章上)〉에서도 방훈을 요임금의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조선의 공부 좀 했다는 학자들은 거의가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과거 시험이 아닌 저술이나 상소문에서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쓰고 있다.

어떤 이는 국정교과서에 따라 쓰고, 어떤 이는 사실대로 밝혀 쓴 것이다. 학파에 따라서도 약간의 차이는 있는 듯하다.

번역할 때 작가가 둘 중 어떤 의미로 썼는지 구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답답한 게 이런 부분이다. 틀린 줄 알면서 그 언해본을 300년 이상 교재로 쓰고 있었으니, 잘 될 리가 있겠는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