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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김주원(金周元)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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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열왕 김춘추 6세손으로, 신라 혜공왕 13년(777)에 시중이 되어 국정을 총괄하는 위치에 섰다가 선덕왕이 후사 없지 죽자, 왕위계승권자로 사실상 지명되었지만, 상대등 김경신(金敬信)에게 선수를 빼앗겨, 명주로 물러났다. 그의 아들 김헌창이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한 한을 품고 웅천주를 근거지로 난을 일으키기도 했다. 

삼국사기 권제9(신라본기 제9) 혜공왕 :  13년(777)...겨울 10월에 이찬 주원(周元)을 시중으로 삼았다.

삼국사기 권 제44 (열전 제4) 김양 열전 : 김양(金陽)은 자가 위흔(魏昕)이고, 태종대왕 9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찬 주원(周元), 할아버지는 소판 종기(宗基), 아버지는 파진찬 정여(貞茹)이니 세력있는 집안으로써 모두 장수와 재상이 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원성왕 즉위년 : 원성왕(元聖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경신(敬信)이고 나물왕(奈勿王) 12세손이다. 어머니는 박씨 계오부인(繼烏夫人)이고, 왕비 김씨는 각간 신술(神述)의 딸이다. 일찍이 혜공왕 말년에 반역하는 신하가 발호하자 선덕(宣德)은 당시 상대등으로서, 임금 주위에 있는 나쁜 무리들을 제거할 것을 앞장서 주장했다. 경신도 여기에 참가하여 반란을 평정하는 데 공이 있었기 때문에, 선덕이 즉위하자 곧바로 상대등이 되었다. 선덕왕이 죽자 아들이 없으므로 여러 신하들이 의논한 후 왕의 조카뻘[族子]되는 주원(周元)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다. 이때 주원은 서울[京] 북쪽 20리 되는 곳에 살았는데, 마침 큰 비가 내려 알천(閼川)의 물이 불어서 주원이 건널 수가 없었다. 어느 사람이 말하였다. “임금의 큰 지위란 본시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폭우는 하늘이 혹시 주원(周元)을 왕으로 세우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지금의 상대등 경신(敬信)은 전 임금의 아우로 본디부터 덕망이 높고 임금의 체모를 가졌다.” 이에 여러 사람들의 의논이 단번에 일치되어 그를 세워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 얼마 후 비가 그치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2 원성대왕(元聖大王) : 이찬(伊飡) 김주원(金周元)이 맨처음에 상재(上宰)가 되고 왕은 각간(角干)으로서 상재의 다음 자리에 있었는데, 꿈이 복두(복頭)를 벗고 흰 갓을 쓰고 열두 줄 가야금을 들고 천궁사(天官寺)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꿈에서 깨어 사람을 시켜 점을 치게 했더니 "복두(복頭)를 벗은 것은 관직을 잃을 징조요, 가야금을 든 것은 칼을 쓸 징조요, 우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옥에 갇힐 징조입니다"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근심하여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  이때 아찬(阿飡) 여삼(餘三. 어떤 책에는 여산<餘山>이라 했다)이 와서 뵙기를 청했으나 왕은 병을 핑계하고 나오지 않았다.  아찬이 다시 청하여 한 번 뵙기를 원하므로 왕이 이를 허락하니 아찬이 물었다.  "공께서 꺼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왕이 꿈을 점쳤던 일을 자세히 말하니 아찬이 일어나서 절하고 말한다.  "이는 좋은 꿈입니다.  공이 만일 왕위에 올라서도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공을 위해서 꿈을 풀어 보겠습니다."  왕이 이에 좌우 사람들을 물리고 아찬에게 해몽(解夢)하기를 청하니 아찬은 말한다.  "복두를 벗은 것은 위에 앉는 이가 없다는 것이요, 흰 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징조요, 열두 줄 가야금을 든 것은 12대손(代孫)이 왕위를 이어받을 징조요, 천관사 우물에 들어간 것은 궁궐에 들어갈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왕이 말한다.  "위에 주원(周元)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상위(上位)에 있을 수가 있단 말이오?"  아찬이 "비밀히 북천신(北川神)에게 제사지내면 좋을 것입니다"하니 이에 따랐다. 얼마 안 되어 선덕왕(宣德王)이 세상을 떠나자 나라 사람들은 김주원(金周元)을 왕으로 삼아 장차 궁으로 맞아들이려 했다.  그의 집이 북천(北川) 북쪽에 있었는데 갑자기 냇물이 불어서 건널 수가 없었다.  이에 왕이 먼저 궁에 들어가 왕위에 오르자 대신(大臣)들이 모두 와서 따라 새 임금에게 축하를 드리니 이가 원성대왕(元聖大王)이다. 왕의 이름은 경신(敬信)이요 성(姓)은 김씨(金氏)이니 대개 길몽(吉夢)이 맞은 것이었다. 주원은 명주(溟洲)에 물러가 살았다. 

삼국사기 권 제10(신라본기 제10) 헌덕왕 : 14년(822) ...3월에 웅천주 도독 헌창(憲昌)이 그의 아버지 주원(周元)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나라 이름을 장안(長安)이라 하고, 연호를 세워 경운(慶雲) 원년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성각 열전 : 성각(聖覺)은 청주(菁州) 사람이다. 그의 씨족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세상의 명예와 벼슬을 좋아하지 않아서 스스로 거사라 칭하고 일리현(一利縣) 법정사(法定寺)에 머물다가 후에 집에 돌아가 어머니를 봉양하였는데 늙고 병들어서 채소만을 먹을 수 없었으므로 다리 살을 떼내여 먹이었고 돌아가심에 지성으로 불공을 드려 천도하였다. 대신 각간 경신(敬信)과 이찬 주원(周元)등이 이 소식을 국왕에게 아뢰니 웅천주의 향덕의 옛일에 따라 이웃 현에서 나오는 조 300섬을 상으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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