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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김중흥(金重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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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40대 애장왕 이름인데, 이는 중국계 기록에 보이는 표기다. 국내 기록에서는 김중희(金重熙) 혹은 김청명(金淸明)이라 했다. 重興은 重熙와 글자 모양이 매우 비슷한데 둘 중 하나가 誤寫가 아닌가 한다.

舊唐書 권 제199上 列傳 제149上 東夷 新羅國 : [貞元] 16년(800. 新羅 哀莊王 1)에 준옹俊邕에게 開府儀同三司 檢校太尉 新羅王을 除授했다. 司封郎中 兼御史中丞 韋丹에게 符節과 册命을 주어 보냈다. 丹이 鄆州에 이르렀을 때 俊邕이 卒하고 그의 아들 重興이 王이 되었다는 보고가 있어 詔命으로 丹을 불러 들였다. 永貞 원년(805. 新羅 哀莊王 6)에 조서를 내려 兵部郎中 元季方에게 符節을 주어 보내어 重興을 王으로 책봉했다. ○ 元和 원년(806. 新羅 哀莊王 7) 11月에 宿衛로 와 있던 王子 김헌충金獻忠을 본국에 돌려보내고, 이어서 試秘書監을 加授했다. [元和] 3년(808. 新羅 哀莊王 9)에 使臣 김력기金力奇를 보내어 來朝했다. 이 해 7월에 力奇가 “貞元 16년(800. 新羅 哀莊王 1)에 臣의 故主 金俊邕으로 新羅王을 삼고, 어머니 申氏로 太妃를 삼으며, 아내 叔氏로 王妃를 삼는다는 詔册을 받들었습니다. 그러나 册使 韋丹이 중도에서 俊邕의 죽음을 알고 그 册命을 도로 가지고 돌아가서 中書省에 두었습니다. 이번에 臣이 본국으로 돌아가므로 臣이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주시기를 엎드려 청합니다.” 라고 上言하니, 詔敇해, “金俊邕 등의 册命은 마땅히 鴻臚寺로 해금 中書省에서 수령해 오게 해야 되니, [鴻臚]寺에 알려서 金力奇에게 주어 받들고 돌아가게 하라. 이어서 그의 삼촌 언승彦昇에게 門戟을 내려주니, 본국은 準例에 따라 내려 주라.” 고 했다. [元和] 4년(809. 新羅 憲德王 1)에 使臣 金陸珍 등을 보내와 朝貢했다. [元和] 5년(810. 新羅 憲德王 2)에는 王子 김헌장金獻章이 와서 朝貢했다. ○ [元和] 7년(812. 新羅 憲德王 4)에 重興이 卒하니, [그 나라에서] 宰相 김언승金彦昇[註071]을 세워 王으로 삼고, 使臣 김창남金昌南 등을 보내와 告哀했다. 

☞애장왕(哀莊王)  ☞김중희(金重熙) ☞김청명(金淸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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