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14)
나무에 둥지 튼 까치[題喜鵲棲樹]
[송(宋)] 조호(趙琥, 1106~1169) / 김영문 選譯評
깃털 다듬으며
높은 가지에 우뚝 서서
인간 세상 작은 그물에
떨어지지 않네
한 가닥 영험함은
실로 틀리지 않나니
처마 끝에서 내게
희소식 많이 전하네
梳翎刷羽立高柯, 不落人間小網羅. 一點通靈良不謬, 簷頭報我喜還多.
(2018.04.27)
미국 소설가 리차드 바크(Richard Bach)는 『갈매기의 꿈』에서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The gull sees farthest who flies highest)”고 했다. 중국 당나라 시인 맹호연은 “높이 나는 새는 나무를 가려 깃들 수 있지만, 영양은 마구 날뛰다 울타리에 뿔이 걸린다(高鳥能擇木, 羚羊漫觸藩)”고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늘 높이 나는 새를 포부와 언행이 뛰어난 사람에 비유한 사례는 많다.
새는 하늘을 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새를 부러워하며 새에다 세상을 뛰어넘는 이상과 소망을 기탁한다. 게다가 까치는 희작(喜鵲)이라 하여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메신저로 여긴다. 높은 곳에 살면 멀리까지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늘 소식도 가장 빨리 인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아니면 색깔을 대비하여 몸 전체가 검은 까마귀는 흉조(凶鳥)로 인식하고, 몸통 주요 부분이 흰 까치는 길조(吉鳥)로 인식한 것일까?
민화에서 까치 두 마리가 마주보는 그림은 ‘쌍 희(囍)’를 뜻하고, 오소리[獾]와 까치[喜鵲]를 함께 그린 그림은 환희(歡喜)를 뜻하며, 까치 앞에 엽전을 그린 그림은 “기쁨이 눈앞에 있다(喜在眼前)”를 의미한다. 엽전의 ‘전(錢)’이 ‘앞 전(前)’ 자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모두 까치를 기쁨(喜)으로 여긴 결과다.
지난 번 살던 아파트에서는 아침에 자주 까치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희소식은 그렇게 자주 전해지지 않았다. 지금 아파트는 시골이라 산과 들이 가까운데도 까치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일상은 그저 흘러갈 뿐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도 있듯이 아무 소식 없음이 가장 좋은 소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아침도 창 너머에서 울리는 까치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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