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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남해1호南海一号, 중국 수중고고학의 금자탑

by taeshik.kim 2024.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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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당시 남해1호선




남해1호, 난하이 원 The Nanhai One, 혹은 South China Sea No. 1은 중국에서는 南海一号 혹은 南海I号 라 표기하는 남송南宋 초기에 침몰한 당시 중국 도자기무역선으로, 난파 시점은 1127~1279년 무렵으로 생각한다. 

1987년 영국 사우샘프턴 해양 탐사 및 복구 PLC(MER PLC) 팀이 18세기 선박 Rhynsburg 난파선을 수색하던 중 발견된 이 난파선은

길이 30.4m, 너비 9.8m, 돛대 제외 높이 3.5m로 드러난 이른바 해양실크로드 중국 최초 발견 선박 실물로,

조사 결과 도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 물품을 잔뜩 싣고 중국 남부 항구를 출항했다가 폭풍우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글바글한 도자



발견 당시 송나라 도자기 약 200점과 송나라 동전, 약 130kg에 이르는 은괴, 황동 주전자, 금 허리 사슬이 수습되어 중국인양회사(China Salvage Company) 대표한테 전달됐다.

다만 당시에는 기술력과 자금 문제도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2차 조사에서는 난파 당시 6만~8만 점에 이르는 품목이 탑재한 것으로 보고됐다.



건져 올려 조사



이 난파선은 수심 23m 지점에 두께 2m가량 되는 뻘에 묻혀 있었다.

발견 당시 갑판甲板은 이미 썩어 없어졌지만 몸체와 기타 부재들은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았다.

목재로는 마미송목马尾松木과 삼목杉木을 썼다.

현재까지도 규모가 가장 큰 송나라 시대 난파선이다. 



모조리 들어올려 수정궁으로



난파선은 2007년 5월 8일 인양에 착수해 그해 12월 21일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체 인양이 마무리됐다.

배는 그 발굴성과 전시를 위해 2004년 말 착공해 2009년 12월 광동성廣東省 양강陽江 해릉도海陵岛에 완공을 본 해상사주지로박물관海上丝绸之路博物馆[해상실크로드박물관, Maritime Silk Road Museum of Guangdong] 비치 시설 중 길이 64m, 너비 40m, 높이 23m인 "수정궁水晶宫[크리스탈 팰리스]"라 일컫는 수영장형 컨테이너에 안치됐다.



으리으리 박물관



방문객들은 수영장 양쪽에 마련한 창문을 통해 진행 중인 선박 발굴 과정을 관람한다.  

이곳 출수 도자기는 대부분 송나라 최고 도자기 가마에서 제작된 것들이며, 특히 서양과 아랍 문화 색채가 많은 도자기가 많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결국 중국에서 저들 지역으로의 수출을 염두에 두고 도자기를 제작했다는 뜻이다. 



도자기님들



도자기 말고도 구리와 철로 만든 생활용품도 인기가 높아 해외로 수출한 것으로 보인다.

쇠솥鐵鍋과 쇠못鐵釘이 유물에 많인 이유는 송나라 시대 중국 철강 산업에서 광둥이 차지하는 위상을 잘 보여준다.

철 완제품 외에도 가공을 위해 해외로 배송할 준비를 갖춘 구리 반제품도 많이 발견됐다.


동전들과 그에서 녹을 닦아내는 작업



구리 주화 역시 많이 발견됐으니 이는 이 무역 주요 화폐였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2016년 4월 8일자 절강일보浙江日報 보도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2016년까지 이곳 모든 수중 고고학 발굴을 종합하면 총 1만4천 이상을 헤아리는 유물과 2천575점의 표본, 55톤 분량 응결물凝結物이 발견됐다. 



좋겠다



1만3천 점 수량이 가장 많은 도자기는 호壺、병瓶、반盤、완碗을 비롯해 기타 청백자기青白瓷器 등이 있다.


도자 외 물품들



종류가 많고 제작 기술과 디테일이 매우 높아 이를 적재한 이 난파선은 송나라 상선이자 국제 무역선임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금기金器 151점(세트), 은기 124점(세트), 청동기 170점, 납 및 주석기[鉛錫器] 53점, 철기 11점, 죽기竹器 13점, 목기 46점, 목기 28점, 칠기 25점, 석기 25점 등 약 1만7천점을 비롯해

동식물 표본, 선박용 목재 등 다수를 포함한다.

이 난파선을 둘러싼 미스터리 중 첫번째는 침몰 원인이다. 이와 관련해 외국 침몰선을 조사한 결과 과적過積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두번째는 출발지다. 출수 자기가 주로 경덕진景德鎭, 절강浙江, 복건富建 등지 생산품을 들어 이 배가 광저우廣州를 출발한 것이 아니라 취안저우[천주泉州] 지역에서 출발했다고 추정한다.

세 번째는 선박이 실어나른 역사적 정보의 신비로움이다.

남해1호 고고학은 해상실크로드의 잃어버린 역사를 회복할 가능성이 높다.

네번째 미스터러는 침몰 시점이라, 배에서는 북송 말기부터 남송 초기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 동전이 발견되며 심지어 한나라 초기 동전도 있다.



선박 부작들과 침몰 상상도



다섯째, 침몰선이 썩어없어지지 않은 비밀이다. 대략 800년이나 지나서도 부재를 유지한 비결 말이다.

아무래도 이는 바닷속이라는 환경에서 찾아야 할 성 싶다.

이런 까닭에 이 난파선은 “해상의 돈황[海上敦煌]” 이라는 별칭이 있다. 



떼부자




배 중앙 지점 양쪽은 깨끗이 빈 상태이고, 뱃머리는 대향 남쪽이며, 물고기 비늘이 여러 개 겹친 고대 중국 선박 독특한 구조를 보여준다.

뱃머리는 위로 향하여 활 모양을 그린다.

현재 발견된 가장 큰 배 폭은 약 9.55배에 길이 21.58미터(잔존 길이)이고, 12개 격벽이 발견된다.


각 선실은 폭이 1.2미터에서 1.8미터 사이이며, 선내에 운반되는 다양한 화물은 일정한 규칙성을 지닌다.



복원한 배



인양방법이 독특하다. 통째로 다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침몰 위치는 수심 약 20m이었지만, 선체는 해저 진흙에 깊게 묻혀 있는 상태. 선체는 원형을 유지한 채 가라앉은 상태라 보존 상태도 양호했지만, 800년 전 목조선에 선체 강도는 기대할 수 없다.



인양. 통째로!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매달아 올렸을까?

선체 파손 방지를 위해 해저 진흙에 묻힌 상태 그대로 컨테이너에 담아 해저 진흙과 선체를 일괄 끌어올리는 방법을 채택했다. 

이에 동원한 컨테이너선은 4천톤급 크레인선 화천룡华天龙
길이 175.0m, 너비 48.0m, 깊이16.5m, 건조년 2007년인 Guangzhou Salvage 소속이다. 

그 인양 방식은 아래 참조. 

https://crane1000.com/5-ways-to-salvage-a-wreck/

海に沈んだ船を引き上げる5つの方法

海難事故により沈んだ船を引き上げるという行為は、事故の物的証拠である船体を確認する為にも必要不可欠なことです。引き上げる方法はケースバイケースで、現場の状況に合わせた方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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