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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21)
유십구에게 묻다(問劉十九)
[唐]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새로 빚은 술거품은
초록빛 개미
조그만 화로는
붉은빛 진흙
저녁 되어 흰 눈이
내리려는데
더불어 술 한 잔
마실 수 있소
綠蟻新醅酒, 紅泥小火爐. 晚來天欲雪, 能飮一杯無.
나는 술을 귀로 가장 먼저 느꼈다. 어릴 때 시골집에선 농주(農酒)나 제주(祭酒)로 쓰기 위해 흔히 술을 담갔다. 안방 아랫목 따뜻한 곳에 술 단지를 묻어두면 며칠 후 뽀글뽀글 술 괴는 소리가 들렸다. 귀로 술을 느낀 후에는 코로 술 향기가 전해져 왔다. 막걸리 특유의 은은한 냄새가 온 방을 가득 채웠다. 아부지께서는 술을 거를 때까지 며칠을 참지 못하시고 작은 바가지로 자주 단지 속 술을 떠서 드시곤 했다. 술이 괼 때 술 단지 속을 들여다보면 작은 거품이 뽀글거리는 가운데 술찌끼가 떠다니는 것이 흡사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보였다.오늘같이 하늘이 낮게 가라앉은 날 붉은 숯 화로를 둘러싸고 아랫목 술 단지에서 금방 걸러낸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면 길고 긴 겨울도 훈훈한 온기 속에서 보낼 수 있을 터이다. 거기에 오랜 벗과 마주 앉아 두런두런 정담을 나눌 수 있으면 이보다 더 값진 삶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지금 나의 서재는 사각형 아파트에 있다. 숯 화로는 고사하고 전기장판이 바닥에 깔려 있다. 술 단지 꿈을 꾸는 내 서재 창밖 겨울 하늘에선 한 바탕 눈발이라도 휘날릴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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