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시사IN》 2016년 08월 19일 금요일 제465호
대통령이 경주 개발에 적극적인 이유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대 국책사업으로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추진했다.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주 개발에 적극적이다.
경주는 지금 온통 발굴 현장이다. 경주 시내 남쪽 월성(신라의 천년 수도 월성이 있었던 곳)처럼 훼손 위험 등으로 인해 예전에는 감히 발굴하지 못했던 곳까지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신라 왕성(王城)의 구조를 확인한다며 굴삭기를 동원해 시루떡 떠내듯이 표토(表土)를 걷어내는 중이다. 성벽 바깥을 두른 도랑 겸 방어 시설인 해자(垓字) 구역 역시 발굴 과정에서 나온 흙더미 천지다. 월성 남쪽을 감돌아 흐르는 남천에서는 ‘신라 시대 월정교’라는 다리가 느닷없이 출현했다. 교각 터만 남아 있던 유적을 관광 문화재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월성 서북쪽에 인접한 드넓은 황룡사 터 인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황룡사 터 남쪽 담장 외곽 구역에서 발굴이 한창 진행 중이다. 절터 한쪽 구역에는 조만간 공식 개관을 알릴 ‘황룡사지 전시관’이 어느새 우뚝하니 건립되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익숙했던 월성과 황룡사 터의 경관은 온데간데없다. 황룡사 금당 터에서 감상할 수 있었던 서쪽 선도산 너머 낙조의 장관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볼썽사나운 전시관이 가로막고 섰기 때문이다.
지금 천년 고도 경주는 무엇엔가 쫓기는 듯 그야말로 전광석화를 방불케 하는 발굴 속도전이 전개 중이다. 다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에도 경주는 온통 발굴로 꿈틀거렸다. 부녀간인 두 대통령에게는 뭔가 공통분모가 있는 모양이다.
ⓒ연합뉴스 1975년 7월, 박정희 대통령(가운데)이 국립경주박물관 개관 테이프를 끊었다. |
그동안 경주에서는 언제나 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개발을 요구하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곤 했다. 황룡사 터를 가리키며 ‘볼 것이 뭐가 있느냐’ 혹은 허허벌판인 월성에 가서 ‘신라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경주의 관광업체 종사자들은 주로 유럽의 유적지에 견주면서 ‘경주가 어떤 곳이며 역사적으로 어떤 내력을 가졌는지 관광객에게 입으로만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목이 아플 지경’이라고 말한다. 결국 볼거리를 내놓으라는 요구다. 명색이 천년 왕국 신라의 수도인데 ‘감동을 줄 만한 볼거리가 없다’는 볼멘소리는 언제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불만은 어느 정도 타당한 측면도 있다. 유럽 유적지의 경우, 석조 건축물의 흔적이 뚜렷한 곳이 많다. 이에 비해 눈에 드러나는 신라의 흔적은 우람한 왕릉급 무덤과 첨성대를 빼면 적어도 경주 분지에서는 찾기 힘들다. 결국 보고 느낄 수 있는 문화재를 요구하는 여론은 천년 왕국 신라의 흔적을 찾아 지하로 내려가라는 압박으로 발전한다. 이렇게 찾은 흔적 위에 ‘볼만한 것’을 세우라는 요청도 나온다.
박정희 정부가 1970년대에 국책사업으로 추진했던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은 볼 것이 없는 경주에서 볼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였다. 국내 고분 중에서 가장 크다는 황남대총을 팠다. 이 사업을 연습하기 위한 교보재가 바로 천마총 발굴이었다. 황룡사 터를 매입해 주민을 이주시키고, 인근의 안압지 및 그 주변에 대한 대대적 준설과 발굴 작업을 벌인 것도 이 시기다. 월성 내의 마을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이를 에워싼 해자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발굴 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국립경주박물관도 다시 세워 대대적으로 재단장했다. 박물관 개관식 테이프 커팅은 박정희 대통령 혼자서 거행했다. 이뿐 아니다. 경주 남산에는 신라의 삼국통일 정신을 계승한다며 화랑의집과 통일전을 이른바 ‘민족 성지’로 세웠다. 때마침 개통한 경부고속도로 경주나들목에는 화랑 동상을, 황성공원에는 김유신 장군 동상을 건립했다. 보문관광단지도 이때 개발되었다.
역사적으로 경주라는 지역 명칭이 탄생한 시기는 고려 초기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경주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다. 그 역사는 40년에 지나지 않는다.
ⓒ연합뉴스 2015년 9월7일, 경주의 신라 왕경(월성) 발굴조사 현장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앞줄 가운데)이 나선화 문화재청장(앞줄 맨 왼쪽)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이같이 ‘박정희 시대 경주 만들기’의 표상이라 할 만한 곳이 바로 불국사와 안압지다. 지금의 불국사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제외하면 신라 시대 불국사와 큰 관련성 없는 건물이다. 박정희 시대에 새롭게 건설된 불국사로 봐야 할 것이다. 불국사의 중심인 대웅전 역시 조선 후기 건축물에 지나지 않는다.
통일신라 시대의 대규모 정원 유적인 안압지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시대에 발굴 조사가 완료되었을 뿐 아니라 그 연못 주변에 건물 몇 개를 상상해서 복원(?)해놓았다. 현재의 안압지 및 주변 건물 모습이 통일신라 시대의 그것과 비슷한지에 대해서는 어떤 고증도 없다. 하지만 지금의 안압지와 주변 건물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굉장하다. 관광객들은 그 아름다움에 통일신라 시대의 영광을 투영시킨다.
‘신라 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 사업에 거액 투입
이처럼 경주에서 ‘눈과 손으로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감동을 캐내려는 욕구가, 박정희의 딸 박근혜 시대에 다시 용솟음치고 있다. 박정희는 경주 지역 문화재 발굴 현장만 세 번 찾았다. 그는 경주를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 간주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모친 육영수 여사의 비극적 죽음 이후 아버지를 수행해서 경주를 자주 방문했다. 경주 시민들 역시, 딸이 아버지 못지않은 애정을 ‘천년 왕성’에 쏟아주리라 기대했다. 박근혜는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이라는 공약을 내걸고는 화려하게 청와대로 입성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공약을 내걸 때 실행 의지와 욕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길은 없다. 그러나 경주 관련 공약들은 비교적 착실하게 이행되었다. 경주 시민들 역시 대통령 공약을 무기로 삼아 가시적인 실행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2013년 10월21일 경주시청에서는 문화재청과 경북도 그리고 경주시가 ‘신라 왕경(王京) 핵심유적 복원·정비’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세 기관을 대표해 변영섭 당시 문화재청장과 김관용 도지사, 최양식 경주시장이 협약서에 서명했다. 경주시 등 세 기관은 지금까지 왕경의 발굴·복원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비교적 구체적인 다음과 같은 전망을 제시한다. “신라 왕경의 조사·연구와 정비를 위해 2014년부터 2025년까지 약 9400억원을 집중 투입하여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저력과 가치를 재발견하고 문화 융성의 모멘텀이 되어 21세기 실크로드의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도록 추진할 예정이다.”
박정희 시대의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이 부활해서 기지개를 켜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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