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시사IN》 2016년 08월 24일 수요일 제466호
두 ‘박통’이 추진한 경주 국책사업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신라왕경 사업 마스터플랜’을 보면 2035년까지 1조5000억원을 경주에 투자할 예정이다. 그런데 사전 승인을 해야 하는 문화재위원회가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박정희 시대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었다. 그러나 박정희가 겨냥한 대한민국 ‘정신의 수도’는 경주였다. 그의 집권기에 남북한은 그야말로 사투에 가까운 정통성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역사 부문에서는, 북한이 고구려를 앞세운 데 비해 남한은 ‘신라 중심주의’로 부를 만한 사관을 시종일관 견지했다. 이런 사관에 따라, 신라의 삼국통일이 한민족이 하나로 되는 발판을 마련한 ‘민족사적 사건’으로 평가되기에 이르렀다.
박정희 정권은 1971년 7월,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에 착수한다. 신라 중심주의 사관을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가 유신체제 내내 의욕적으로 추진한 이 사업 결과를 통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경주가 출현했다. 이 사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앞으로 차근차근 살필 것이다.
박근혜 정권 출범과 더불어 경주 지역 인사들을 주축으로 추진 중인 ‘신라왕경 핵심유적 정비·복원사업 종합기본계획(이하 신라왕경 기본계획)’은, 박정희 시대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의 심화 버전이다. 사업 규모와 기간, 그 내용 등으로 볼 때, 부녀가 각각 착수한 과거와 현재의 두 국책사업은 일란성 쌍둥이를 방불케 할 만큼 닮았다. 박근혜 정권의 ‘신라왕경 기본계획’에 따라, 신라의 천년 왕성인 월성에서는 이미 발굴이 시작되었다. 황룡사 터 인근에 대한 발굴 작업도 속도를 내는 중이다.
ⓒ연합뉴스 1975년 7월 박근혜 영애(가운데)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왼쪽)과 국립경주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해 신라 금관을 보고 있다. |
박근혜 정권의 신라왕경 기본계획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유감스럽지만 누구도 그 실체를 명확히 알지 못한다. 이 사업의 기본 계획이 확정·공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업 전담조직인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추진단(이하 추진단)’은 2014년 4월 말, 국무총리 훈령을 통해 공식 출범했다. 이미 몇몇 유적지에서는 집행 단계에 들어가 있다.
추진단의 설치 목적은 ‘장기적 난제 사업으로 대통령 지방 공약인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 사업의 중앙-지방 간 협업을 통한 본격 추진’이다. 4급 단장 아래 3팀, 12명으로 구성되었다. 문화재청 6명, 경주시 4명, 그리고 문체부와 경북도에서도 각각 1명씩 파견되어 활동 중이다.
이런 추진단 구성은 여러 모로 1970년대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박정희 시대의 ‘추진단’은 청와대 경제수석이 단장을 맡은 명실상부한 범정부 기구였다. 이 같은 전례와 비교해보면, 지금의 신라왕경 추진단이 약간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추진단이 수행할 ‘신라왕경 골격 복원을 통한 천년고도 경주의 정체성 회복 및 역사문화 자원의 가치 증진과 적극적 활용기반 구축’ 사업은 그 내용을 보면 결코 박정희 시대의 그것에 못지않다.
무엇보다 당초의 ‘신라왕경 기본계획’은 사업 기간이 2014~2025년도로 12개년에 달한다. 총사업비는 9450억원으로, 이 중 국비가 6615억원이며 나머지 2835억원은 지방비다. 사업 대상지의 전체 면적은 196만9400㎡(약 59만5743평)다. 박정희 시대의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은 문화재 조사·복원 및 정비를 표방하긴 했으나 사실은 보문관광단지 개발이 사업의 주축이었다. 그러나 이번 신라왕경 기본계획은 순수한 문화재 관련 사업으로 관광 부문은 빠졌다. 그런데도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을 쏟아부을 계획이라는 점에서, 단군 이래 최대의 문화재 사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후 계획 규모가 더욱 확장되었다. 일단 사업 종료 연도를 2025년에서 2035년으로 10년 늘렸다. 당초 사업 기간인 ‘2014~2025년’을 중단기로 묶고, ‘2026~2035년’ 10개년 계획을 추가한 것이다. 추진단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4991억원으로 예상한다.
정리하자면, 박근혜 정부는 2035년까지 1조5000억원 정도를 투입해서 경주에 “역사·문화유산의 가치 재창출을 통한 천년 역사도시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려 한다. 사실상 경주의 경관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발상이다. 이런 계획 수립과 병행해서 이미 지난해 6월에는 8개 핵심 유적에 대한 중·장기 발굴계획을 수립했다. 앞서 말한 대로 월성 일원과 황룡사 터 인근에서는 이미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삐걱거림이 발생했다. 추진단에서 마련한 ‘신라왕경 사업 마스터플랜’에 문화재위원회(문화재위)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추진단의 사업 대상 지구들은 거의 전부가 ‘문화재 보호구역’이다. 이런 구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개발과 ‘현상 변경 행위’에는 문화재위원회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추진단은 지난 5월11일, 2년에 걸쳐 야심차게 마련한 마스터플랜을 문화재위에 제출했다. 문화재위 측은 심지어 추진단의 설명을 들은 뒤 계획서 자체의 수령까지 거부하고 말았다. 1964년 문화재위 출범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문화재위가 추진단이 마련한 사업 내용을 ‘위험’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연합뉴스 2013년 10월 경북 경주시청에서 열린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 종합기본계획’ 업무협약식. |
문화재위원회는 사업계획서 수령 자체를 거부
그렇다면 문화재위는 과연 어떤 내용을 문제 삼았을까? 문화재위는 이 사업 추진 단계에서부터 ‘복원’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사실 신라왕경 유적을 조사하고 정비하는 사업이라면 반대할 필요가 전혀 없다. 문화재위 역시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러나 조사·정비를 토대로 왕경 유적을 ‘복원’한다니? 문화재위원이라면 누구도 이른바 복원에 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추진단은 ‘철저한 고증 연구를 통한 체계적인 발굴조사 진행 및 복원·정비사업 추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철저하게 고증하고 연구한다 해도, 예컨대 이미 몽골 침략 당시 불타버린 황룡사 9층 목탑을 신라 시대 모습 그대로 다시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혹 세운다 한들 그것은 21세기의 우리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목탑에 지나지 않는다.
추진단이 내놓은 마스터플랜을 보면 곳곳에 황룡사 9층 목탑 복원 같은 계획이 마련되어 있다. 예컨대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인 동궁과 월지(안압지) 권역에서는 2021~2025년도에 정전(正殿)과 편전, 중문과 회랑을 복원하겠다고 한다. 황룡사 역시 현재까지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거의 모든 건물 기초 위에 강당이며 그 부속 건물, 중문과 담장은 물론이고 논란이 분분하기 짝이 없는 9층 목탑까지 만들어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런 계획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장차 경주평야 한복판에서 ‘황룡사 터’가 아니라 ‘신라 시대의 황룡사’라 자처하는 실제 사찰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문화재위가 이런 계획들에 분노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상상의 역사도시 경주’는 이렇게 해서 일단 퇴짜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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