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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마[薯], 매장문화재의 저승사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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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마당 축대 밑 잡초를 뽑다 살피니 마다. 엄마가 축대 위에 심카 길구던 마를 작년에 뽑아 버렸는데 그 마가 뿌린 씨앗이 발아한 것이다.

마가 요샌 마트에서도 심심찮게 보고 또 웬간한 큰절 앞 노점상에서도 만난다.

신라 진평왕 딸래미 선화善花를 아주 몹쓸 여식으로 만들어 제 마누라 삼았다는 백제 노무자가 서동薯童이라, 이는 글자 그대로 풀면 마를 전문으로 캐다 파는 일용직 근로자 중에서도 좀 어린 놈이다.

감자

우리가 이 서동요 이야기에서 주시할 점은 마[薯]가 지닌 구황작물로서의 기능이다. 저때는 그 이웃사촌이라 할 만한 고구마나 감자가 이땅엔 흔적조차 없을 때다.

농협이 신토불이를 내세우며 선전하는 농작물 절반은 그 뿌리를 캐면 다 수입산이다. 고구마? 감자? 18세기 전만 해도 이 땅엔 없었다.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킨 이가 마였다.

이 마뿌리는 생긴 꼬락서니가 고구마보다 대체로 얇기는 하나 훨씬 길고 삶거나 찌면 감자와 비슷하고 때깔은 천상 가장 흔한 감자의 그것이다.

생으로 많이 시식한다는 점에서 전연 그렇지 아니한 감자와는 길을 달리하며 쪄서 혹은 날것 양쪽으로 뽀갠다는 점에선 고구마와 같다.

이 마를 요새 집단으로 인공재배하는 데가 있는데 소양강변 춘천이 대표적이다.

나는 고구마 감자가 수입됨으로써 급속도로 마가 일상에서 퇴출되었다고 보거니와 그것 무엇보다 생육환경에서 비롯한다.

자연상태 마는 대체로 덤불 밑에서 자라며 뿌리가 열라 깊이 박힌다.

마를 밀어낸 고구마



이 자연상태 마를 한때 나는 온 가시덤불 헤치며 캐러다녔으니 그걸 캔 자리는 멧돼지가 파놓은 흡사 그 꼬라지다.

그러니 오죽 캐기가 힘들겠는가? 마동은 그 어려운 마캐기 전문 노가다였다.

마는 땅속으로 깊이깊이 뿌리를 내린다는 점에서 골을 돋우어 키우며 지표 아래 얼마 안되는 지점에서 대가리만 하거나 불알보다 굵은 열매를 몽실몽실 선사하는 고구마 감자와는 왕청 다르다. 마는 뿌리가 하나다.

곧 이 점은 경제성 측면에서 마가 고구마 감자와는 경쟁이 안됨을 의미한다.

마동이 조선후기에 태어났더래면 고구마 감자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재배지가 하필 소양강변인가?

그 강력한 충적대지라, 이 일대는 돌도 없고 땅이 아주 고와 마가 뿌리도 쉽게 내리고 무엇보다 캐기가 좋다.

딱 하나 단점은 그 뿌리가 지하 2미터까지 내린다는 점이다.
이걸 삽 곡갱이로 캔다면 칡캐기만큼이나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 소양강변 마농장은 포크레인으로 캔다.

문제는 이 소양강변이 유적유물 지뢰밭이라는 점이다.

중도 유적 두고 각종 설레발이 난무하는데 이건 이 지역 사정을 전연 모르는 소리다.

중도 인근 같은 소양강변 신매리 같은데 파면 중도보다 더한 유구 밀집양상이 펼쳐진다.

 

마를 방축放逐한 고구마

 

 

레고랜드에 중도유적이 없어진단 말 하기 전에 마농장에 이미 그보다 더한 유적이 파괴됐고 파괴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신매리 일대를 사적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없지 않았으나 벌떼처럼 들고 일나는 바람에 유야무야되기도 했다.

마는 문화재의 저승사자다. 마뿌리에 버텨나는 유적은 없다.

고구마 감자한테 밀려난 분풀이를 이리하는지도 모르겠다.

마 숨통을 끊은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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