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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만 그루 청매화와 바꾼 국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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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73)


녹악매 두 수(綠萼梅二首) 중 둘째 


[宋] 임희이(任希夷) / 김영문 選譯評 





수산간악 동쪽에

악록화당 자리 했고


매화나무 만 그루

이궁을 둘러쌌네


선화 연간 옛일은

기억하는 사람 없어


분바른 얼굴 쓸쓸하게

북풍을 마주하네


萼綠華堂艮嶽東, 梅花萬數繞離宮. 宣和舊事無人記, 粉面含凄向朔風. 





한시 중에서 역사를 소재로 읊은 시를 영사시(詠史詩)라고 한다. 역사 속 일화에 대한 감상, 느낌, 비평 등을 풀어낸다. 시에서 다루는 역사를 모르면 그 시를 이해하기 힘들다. 이 시도 북송 휘종(徽宗) 선화(宣和) 연간에 벌어진 간악(艮嶽) 조성 및 북송 망국이라는 대사건이 배경에 깔려 있다. 남송 시인 임희이가 청매화(綠萼梅) 가득 핀 어느 봄날, 북송 도성 변경(汴京) 간악에 들렀다가 읊은 시로 보인다.


북송 망국 군주인 휘종은 즉위 후 후사(後嗣)를 얻지 못했다. 당시에 어떤 도사가 휘종에게 건의하기를 “도성 궁궐 동북쪽이 허(虛)하므로 산을 좀 높이 쌓아 비보(裨補)하면 아들을 많이 나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휘종은 천하의 기암괴석과 기화요초를 모아 궁궐 동북쪽에 큰 산을 쌓고 광대한 원림을 조성했다. 전국의 꽃돌을 모으고 기이한 나무와 화초를 징발했으므로 백성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무려 5년에 걸친 대형 토목공사에 백성은 지치고 국력은 소진됐다. 이 시절을 배경으로 나온 소설이 바로 양산박 108의적의 활약상을 그린 《수호전》이다. 


아름답고 드넓은 원림을 조성한 휘종은 그 원림을 간악(艮嶽)이라고 이름 붙였다. 《주역》에서 간방(艮方)은 동북쪽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또 간악을 수산(壽山)이라고도 불렀는데 임금의 만수무강을 빈다는 뜻이 들어 있다. 두 명칭을 합하여 수산간악(壽山艮嶽)이라고도 칭했다. 지금 북경 이화원(頤和園) 뒷산이 만수산(萬壽山)인 것과 똑 같은 의미다. 게다가 휘종은 직접 「어제간악기(御製艮嶽記)」를 지어 간악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늘 그곳에서 연회를 열고 서화를 즐겼다. 백성의 원성을 돌아보지 않는 나라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진족 금(金)나라가 쳐내려와 휘종을 포로로 잡아가고 간악을 폐허로 만들었다.


간악에서 유명한 경관 중 하나가 악록화당(萼綠華堂) 인근 만 그루 매화 숲이었다. 우리나라 조선 중기 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성주 회연서원(檜淵書院)에 조성한 ‘백매원(百梅園)’도 대형 매화 숲으로 유명한데 무려 그 백 배인 만 그루 매화 숲이다. 상상을 초월한다. 뿐만 아니라 악록화당이라는 건물 이름으로 짐작해보면 그 매화 만 그루가 분바른 듯 새하얀 꽃을 피우는 녹악매 즉 청매화였음이 분명하다.


임희이는 황성 원림의 폐허에 흐드러지게 핀 청매화 숲을 보고 참을 수 없는 비감에 젖었다. 백성의 원성은 외면하고 완물상지(玩物喪志)에 빠졌던 휘종은 결국 금나라에 잡혀갔다가 치욕 속에서 죽었다. 만 그루 청매화와 국운을 바꾼 결과는 이처럼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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