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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는 썩어가고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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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85)


바둑 구경 그림[觀弈圖]


[明] 명 고계(高啓) / 김영문 選譯評 


산속으로 잘못 들어

선 채로 바둑 구경


가족들은 날 저물자

땔나무를 기다리네


어찌하여 바둑 한 판에

천년 세월 소요됐나


신선 할배 돌 놓는 게

너무 늦은 탓이리라


錯向山中立看棋, 家人日暮待薪炊. 如何一局成千載, 應是仙翁下子遲.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한자 어휘로는 난가(爛柯)라고 한다. 나무꾼이 산속에서 어떤 사람들이 바둑 두는 걸 구경했는데 바둑이 끝나고 보니 도끼자루가 썩어 있고, 동네로 내려왔을 때는 이미 자신이 살던 시대가 아니라 몇 세대 뒤였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이 시는 이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에 쓴 화제(畫題)다. 이 이야기는 중국 남조 양(梁)나라 임방(任昉)의 『술이기(述異記)』에 처음 등장한다. 


실제로 바둑 한 판을 둬보면 한 두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시간 도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두다 나라를 망친 것과 같은 일이 있는 반면, 정신을 집중하여 전체 판세를 읽고 국면을 운영하는 사고가 현실 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도 있다. 지금은 프로 기사 제도가 생겨서 각종 프로기전과 막대한 상금의 세계 바둑대회까지 열리는 판국이니 바둑이 좋다 나쁘다는 논란은 아무 의미 없는 공담에 불과하다. 게다가 TV 속기 바둑을 보고 있을라치면 이제 바둑 구경하다 도끼자루가 썩는 일은 도저히 발생할 수 없음을 느낀다. 감독관이 초읽기로 시간을 마구 몰아대면 관전하는 사람들조차 피가 마를 지경이니 말이다. 


나는 국민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할 때까지 두 달 정도 기간에 혼자서 바둑을 배웠다. 내 친구의 형이 동네 바둑 고수여서 그 집에 바둑 책이 많았는데, 틈틈이 가서 독학하면서 친구들과 바둑을 뒀다. 처음에는 판판이 깨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대등하게 둘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당시에 우리 동네에는 재미있는 바둑 룰이 있었다. 첫째, 절대 장고할 수 없다. 장고하면 당장 “바둑 두는 놈 어디 갔나?”라고 면박이 들어왔다. 요즘도 초읽기 대신 욕설과 면박으로 재촉하면 효과가 엄청 나리라 생각한다. 둘째, 아다리(단수)를 치면서 “아다리!” 소리를 안 하면 무효로 쳤다. 마치 장기 둘 때 “장군!”을 부르는 것처럼 "아다리!"라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셋째, 세 번까지는 무를 수 있었다. 고등학교 들어가고 나서야 이 모든 룰들이 「촌 동네 룰」임을 알았다.


인터넷 바둑이 생기고 나서 틈틈이 컴퓨터로 바둑을 뒀다. 한 때 초단까지 두다가 너무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7년 전부터는 완전히 손을 뗐다. 요즘도 번역이 잘 안 되고, 글이 잘 안 써지면 인터넷 바둑이나 한 번 둬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그마저도 시간이 아깝다고 여긴다. 공자께서는 “장기나 바둑을 두는 것이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不有博奕者乎, 爲之猶賢乎已)”라고 이야기했지만 나처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사람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가르침이다. 


그래도 더러 산행을 하다가 넓적한 너럭바위라도 만나면 바둑판 놓고 신선놀음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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