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망한 것이 독서 때문인가? by 왕부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5. 7.
반응형

by 홍상훈



왕부지




강릉이 함락되자 양梁나라 원제元帝는 고금의 도서 14만 권을 불태웠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 권의 책을 읽었음에도 오늘과 같은 일이 생겼는지라, 불태워 버렸다.”

자기의 어질지 못함을 후회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책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독서의 깊은 뜻을 모르는 이의 말이다.

원제가 멸망을 자초한 것은 독서 때문이 아니지만, 그래도 독서의 잘못이 아닌 적이 없었다.

원제가 짓고 편찬한 책을 살펴보면, 변려騈儷의 문구를 찾아내고, 여러 일화나 신기한 행적을 수집하여 자기의 박문강기博聞强記를 자랑하곤 했는데, 이것은 만 권을 읽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당시 자기의 부친이자 황제는 역적 때문에 목숨이 위태롭고 종묘사직은 사분오열로 찢길 위험에 처해 있었는데, 그는 아침저녁으로 책을 읽느라 피곤하여 대의를 떨치지 못하고 기회를 잡지 못했으니, 이것이 어찌 노름이나 주색에 빠진 것과 다르겠는가?

사람의 마음이 일단 의지하는 바가 생기면, 성현의 가르침과 전적은 뜻도 모른 채 그저 자구와 글자만 송독하는 와중에 지향과 기개를 가둬 버리기에 충분하다.

자잘한 곡절을 얻고 대의를 망각하며, 일화나 신기한 행적에 빠져서 은미한 뜻을 담은 언사[微言]를 잃게 되면, 장차 커다란 미혹에 빠지게 될 바탕이 되고 만다.

하물며 제자백가의 작은 도리와 자구字句를 정교하게 다듬는 따위의 하찮은 일임에랴!

아! 어찌 다만 원제가 어질지 못해서 독서가 그를 그저 황음무도한 지경으로 이끌었겠는가?

송나라 말엽에서 오랑캐 원나라가 지배하던 시절까지 명분상 유생이라고 하는 이들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올바른 가르침을 배웠음에도 어떻게 사물의 원리를 탐구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오경五經’과 《논어》, 《맹자》의 글자를 헤아려 죄다 기억하고, 장구章句가 합쳐지고 분리됨에 따라 호응하는 음운音韻의 형태를 변별하여 모방했다.

종일 배불리 먹고 무익한 교감校勘과 고증에 열심히 매달린 채, 문장을 쓰면 맥락과 조리, 비교와 대우對偶를 풍성히 갖추는 것을 훌륭하다고 여겼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심신心身에 무슨 도움이 되었겠는가?

정치와 교화에 무슨 도움이 되었겠는가?

그런데도 자신은 엄밀한데 남들은 소홀하고, 자신은 전문적인데 남들은 산만하며, 자신은 근면한데 남들은 나태하다고 오만을 떤다.

이런 자들이야말로 표정만 인자한 척하면서도 자기의 허위를 의심하지 않고, 자잘한 지혜를 자랑하기 좋아하면서 그런 방법으로는 결국 성취를 이룰 수 없음을 모르는 경우가 아닌가!

그런 사람은 곤궁한 상황에서는 남의 자제를 발전하지 못하게 가둬두고, 출세하면 고집을 내세워 남의 나라를 망치니, 이런 자들이 적군이 성 아래에 이르렀는데도 《노자》를 강론한 원제나, 오랑캐 기마병이 강을 건넜는데도 고승高僧 원오극근圓悟克勤과 함께 참선參禪하려 했던 황잠선黃潛善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또 가무에 빠져 있으면서 머리에 칼날이 떨어지는데도 깨닫지 못했던 소보권蕭寶卷이나 진숙보陳叔寶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정호程顥는 사양좌謝良佐가 사물을 완상玩賞하느라 지향을 잃었다고 비판했는데, 완상하는 것이 있는데도 지향을 잃지 않은 예는 없었다.

양나라 원제와 수나라 양제, 진후주陳後主, 송나라 휘종徽宗은 모두 책을 읽었던 이들이다.

송나라 말엽부터 오랑캐 원나라 때까지 하찮은 유생들도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미혹되었다는 점에서 똑같았다.
(중략)

중대한 본체를 견지할 고명한 도량이 없고, 독자적인 식견을 확립할 만한 임기응변의 능력이 없다면, 만 권의 책을 읽었더라도 그저 미혹으로 이끌릴 뿐이니, 차라리 배움이 없어 술수를 모르는 이가 그래도 그 순박함을 보전할 수 있는 게 더 낫다.

그러므로 공자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했다.

지향이 정립되면 배움도 더해지니, 지향이 없는데도 배움을 지향으로 삼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배움을 통해 그 지향을 옮긴다면 그것은 이단의 간사한 주장이요 세속에 떠도는 소문, 추잡한 쾌락을 추구하는 자잘한 지혜일 뿐이다.

그것들은 크게는 마음을 부식腐蝕하고 작게는 세월을 황폐하게 낭비하도록 만드니, 원제가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한 이유이다.

그러니 어찌 그의 허물을 만 권의 책을 섭렵한 일로 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비루한 면을 본받는 유생의 무리가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왕부지, 독통감론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