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시대, 하면 우리는 아무래도 식민지배의 기억이 있어서
이 시대는 제국주의자들의 시대, 라고 정의하기 쉽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메이지시대의 초창기는 조금 다른 각도에스의 조명도 필요한 것이,
이 메이지 초기는 막부를 쓰러뜨리고 개국개화의 국가적 대전환 위에
막부편에 섰던 사람이나 아니면 신정부 편에 섰던 사람이나
극소수의 벌열이 된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쪽박 차고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여
극도로 빈핍한 이들이 공부 하나로 출세해보겠다는 기풍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던 대였다.
이 시기에 일본의 교육제도라는 건 근대적이라고 보기 일천하여
허술하기 짝이 없었는데
아래로는 소학교에서 위로는 대학까지 졸업생도 없고 가르칠 선생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가며 교육하는 상황이라 어제까지 교육생이었던 사람이 선생이 되고
입학한지 몇 달 만에 새로 생긴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이들이 즐비했으며
이들은 공부하면 팔자 고친다는 생각이 사회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이 시대의 상징격 인물로
시바료타로가 그의 소설 "언덕위의 구름"에서 사실상 주인공으로 내세운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를 꼽는데
이 사람의 프로필을 보면,
安政6年(1859年)1月7日(1859年2月9日 생으로,
明治8年(1875年):공짜 교육에 월급까지 주는 관립사범학교에 입학 (한학교육을 받아 그 자격으로 입학)
明治9年(1876年)7月:1년만에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소학교 선생으로 근무 시작
明治10年(1877年)5月:1년만에 이를 관두고 새로 생긴 육군사관학교 입교
明治12年(1879年)12月23日:2년만에 육군사관학교 졸업, 소위 임관
明治16年(1883年)2月28日:기병 중위, 육군대학 입교
明治18年(1885年)12月28日:육군대학 졸업
明治20年(1887年)7月25日: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유학
明治24年(1891年) 12月13日:유학에서 4년만에 귀국
등 빠른 속도의 출세가도를 달렸다.
원래 한학을 배운 이 사람은
육군사관학교 졸업할 때까지 불과 3년의 정규교육만 받았으며
이후 정부지원으로 프랑스 육사 4년 교육을 받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이 러일 전쟁을 수행할 당시 장군급은 모두 이러한 경력의 소유자였으니
아무것도 없던 나라에서 빠른 속도로 배우고 출세하였던 이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시대의 일본인과 가장 비슷한 기풍의 한국인들은
1930년대 후반부터 60년대까지 출생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식민지의 경험만 없다면 한 세대 정도 빨라질 수도 있었다고 보는데
필자의 판단으로는 식민시기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차별" 때문에
한국인의 경우 한 세대 정도 이런 경험이 늦어졌다고 본다.
요는 메이지 시대 초기에 일본을 채우고 있던 에너지는
제국주의도, 애국주의도 아닌
나도 한번 출세해 보겠다는 일신영달의 동기가 가장 중요했다는 말이다.
우리의 경우도 19세기 격동의 시대를 보내 성장해 나온 이들이
구한말 나라가 갈짓자로 걷지 않았다면 그 안에서
수많은 걸출한 인물이 나왔을 터,
나라가 망하고 역사의 경로가 황당한 방향으로 치닫는 바람에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딱 한가지 키워드,
"독립운동"이라는 것만으로 평가받게 된것은
그들 자신 뿐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 입장에서도
비극이다.
왜냐.
고려가 망할 때 저마다 고려를 위해 순국하고
절의를 지켜 벼슬길을 끊었다고
조선시대 유수한 가문들은 모두 족보에 그렇게 써댔지만
실제로 고려를 위해 죽은 사람은 정몽주,
벼슬을 마다하고 낙향한 이는 길재 정도였을 것이다.
나머지 집안들은 모두 실제로 사서를 찾아보면
잘만 출사하고 번영을 누렸지,
고려가 망함으로써 절단이 난 씨족은 기껏해야 왕씨 정도라
여말선초에 지배계층의 교대는 거의 없었던 탓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절의를 숭상하는것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백 명에 한 명 정도라는 뜻이다.
나머지 백명에 99명은 그런 숭고한 행동 말고
자신이 평생 먹고 살아가며, 좀 더 잘 살아보고자 하는 동기에서 나오는
그 사람의 열심한 삶, 이것으로 사회에 기여하게 되는 바,
1910년 나라가 망한 후에는 오직 독립운동 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그 이후 한 세대를 평가하는 것은
여말선초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오로지
고려에 대한 충절 하나만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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