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선시대 미라 해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실견하기는 딱 한 번인데
그 담부턴 그런 현장이 있다 해도 다시는 안 갔으니
그 전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지겨워 죽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옷가지들을 입혀 놨는지 벗겨도 벗겨도 끝이 없었다.
기억이 잘못일 수 있는데 장갑 버선 등등에서 시작해 무릇 60가지를 입혀 놨는데 너무 많다 했더니 이쪽에 이골이 난 안동대 이은주 선생 왈
이건 약과에요 훨씬 더 많아요
하는 게 아닌가?
그 해포작업이 물경 반나절이나 계속되었는데 졸려 죽는 줄 알았다.
내가 새삼 이 일화를 꺼내는 이유는 고고학이 무덤에 환장하는 건 다 좋은데
그걸로 그 시대상이라고 구현했다간 큰코 닥치기 때문이다.
저 많은 옷가지 걸치고 다녔다고?
숨 막혀 죽고 설혹 그렇지 않다 해도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무덤이라는, 사후세계라는 특수성을 간과하면 그 무덤에서 바탕하는 연구는 사상누각에 다름 아니다.
신라무덤을 발굴했더니 마갑이 나오고 사람 갑옷이 나오고 블라블라 그걸 복원하면 신라 개마무사가 이렇더라?
다 거짓말이다.
무덤인 까닭에 껴묻거리로 개똥폼 내라 해서 잔뜩 넣어준 것을
또 조문객들이 내놓은 부의품들을 묻어놓은 것을,
그것을 일상에서도 그 죽은 사람이 전장터에 그리 차고 나가서 전투했다 생각하면 착각이요 오산이다.
뭐 고구려 벽화고분에서 그게 보인다고?
그림에서 보인다고 그게 실생활인 줄 아는가?
사후세계서 무슨 짓인들 못하는가?
이 무덤이라는 특수성을 간과하면 저 미라처럼 조선시대 사대부가 여인들은 한여름에도 60가지가 넘는 각종 옷가지를 걸치고 다닌 강시가 된다.
무덤 좋아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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