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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민족주의는 결코 열릴 수 없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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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좌우를 막론하고 팽배한 내셔널리즘에 대한 심각한 비판은 내 기억에 2000년대 접어들어 비로소 가능했다. 이 비판에 이른바 진보 계열로 통하는 쪽이 당혹감 혹은 타격이 더 컸다.

그 이전까지 내셔널리즘은 보수 꼴통들의 전유물로 알았다가 그것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데 당혹하지 않을 사람 있겠는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명칭 개정이다.

이 단체는 역사를 보면 1974년 출범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인데 그것이 민주화운동이 특히 거센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명칭을 변경한다.

그러다가 2007년 12월 8일 현재의 한국작가회의(The Association of Writers for National Literature)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꾼다.

이들이 바꾸게 된 사건 중 하나는 '민족문학'이 그것이 내세우는 저항정신과는 전연 딴판으로 영어로 번역할 적에는 '내셔널'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이 내셔널을 외국에서는 나찌즘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민족문학...명칭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이들이 보인 행태는 실은 나찌즘의 그것을 방불한다. 그들이 지고지순하게 신봉한 민족, 이것이 실제는 차별 없이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내이션 혹은 내셔널리즘에 대한 비판에 표적이 된 자들은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심적으로는 엄청난 압박으로 작동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민족이라는 슬로건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버린 사건은 실은 굴욕적인 패배였다.

이와 궤를 같이해 이 무렵 부쩍 이들 내셔널리스트들이 부르짖은 말이 "열린 민족주의"였다. 이는 곧 그네들이 그때까지 견지한 민족주의가 열림을 지향하는 민족주의였다는 것이며, 이는 곧 그네들이 그토록이나 집요하게 공략한 민족주의와는 결이 다르다는 구분 지음에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열린 민족주의를 들고 나오자 이 역시 얼토당토 않은 말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나 역시 그에 대해 격렬한 혐오감을 표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민족주의는 태생적으로 열릴 수가 없다." 
 
민족주의가 열린다는 것은 지나가는 똥개도 웃어버릴 일이다. (2015.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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