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시사IN》 2016년 09월 22일 목요일 제470호
박정희의 황당 지시 “왕성 터에 호텔 지으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9년 신정 연휴를 경주에서 보냈다. 황룡사 발굴
현장을 찾았던 그는 ‘반월성을 발굴하고 영빈관을 지을 것’을 지시했다. 신라 천년 왕성에 호텔이 들어섰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1979년 1월6일, 당시 석간이던 <동아일보> 1면에는 ‘부산·경주에서 신정 연휴 보내’라는 제목으로 1단짜리 박정희 대통령 동정 기사가 실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두 영애(令愛) 그리고 영식(令息) 지만 생도 등 가족과 함께 부산과 경주에서 신정 연휴를 보낸 뒤 5일 오후 상경했다.” 박정희의 신정 연휴 행적도 구체적으로 보도되었다. “박 대통령은 경주에서 황룡사터 발굴 현장 분황사 석탑 등 고적을 둘러보고 보문관광단지 현장도 살펴봤다.” 그의 동선과 관련된 사진도 게재되어 있다. ‘경주코오롱호텔 쇼핑센터에 들러 기념품을 들여다보고’ 있는 장면이다.
당시 신정 연휴는 1월1~3일이었다. 적어도 보도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박정희는 연휴 기간 이후에도 경주에 계속 머문 셈이다.
박정희의 행적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다른 자료도 있다. 같은 날(1979년 1월6일) 아침에 나온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기사다. 이 신문들 역시 <동아일보>와 동일하게 1면의 같은 자리에 1단으로 대통령 소식을 전했다. 박정희가 신정 연휴 동안 “부산 동래에 있는 충렬사(忠烈祠)를 참배”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기사에는 ‘큰 영애, 지만 육사 생도’와 함께 황룡사지 출토 유물들을 살피는 장면이 사진으로 첨부되었다. 두 신문에 나온 ‘큰 영애’는 박근혜 현 대통령이다. 당시 박지만씨는 육사 생도였다.
<매일경제신문> 1면에도 같은 내용의 대통령 동향이 실렸다. 게재 사진은 <경향신문>에 실린 것과 같다. 아마 청와대 측에서 찍어 언론사에 배포했을 것이다.
ⓒ연합뉴스 경주보문단지에서 외교사절들과 다과를 나누며 담소하는 영애 박근혜. |
박정희가 이 기간에 둘러봤다는 동래 충렬사는 어떤 곳인가? 임진왜란 때 부산에 상륙한 왜군에 맞서 싸우다 분사한 동래부사 송상현(1551~1592), 부산진첨절제사 정발(1553~ 1592) 등 전근대 부산의 호국선열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조선 시대에 세워진 뒤 퇴락 일로에 있던 충렬사 역시 박정희 시대에 대대적인 개·보수(한창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이 시행되던 1976년 이후 1978년까지)를 거쳐 재단장되었다. 순국선열을 현창하고 이를 통해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을 만들어내고자 한 박정희의 역사관이 잘 읽히는 대목이다.
박정희는 경주에서 황룡사 발굴 현장과 분황사를 찾았다. 황룡사터 발굴 유물을 둘러보는 사진으로 보아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황룡사 발굴 현장에서 일하다가 박정희를 영접한 바 있던 최병현 숭실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979년 1월6일자 <경향신문> 1면. |
“그해는 박 대통령이 시해된 1979년이라 잊을 수가 없지. VIP(대통령)가 (1978년) 12월에 황룡사 발굴 현장에 뜬다 해서 다들 긴장했지. 근데 웬걸? 12월 말이 되어도 안 나타나는 거야. 그러니 김정기 (문화재연구소) 소장이고, 김동현 (황룡사 발굴) 단장이고 뭐고 대기하고 있다가 다들 서울로 철수하고 현장 사람들만 대기했지. 그러다가 신정 연휴가 되었어. 그땐 연휴가 사흘간이었잖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연휴 때 대기했더니 (대통령이) 내내 안 오더라고? 그러다 (1월) 3일 저녁에 ‘에이 상황 끝났다’ 하고, 성질도 나고 해서 (퇴근한 뒤) 술을 왕창 퍼마셨지. 한데 웬걸? 그 이튿날 출근했더니 아침 9시30분인가 떡하니 VIP가 현장에 들이닥친 거야. 아마 불국사 쪽 코오롱호텔에서 주무시고 황룡사로 들어오는 모양이더라고? 그해 가을인가 보문관광단지에서 아스팍(ASPAC)인가 하는 무슨 국제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었는데, 그걸 사전 점검한다고 대통령이 떴어.”
최병현 교수의 기억에 약간의 착오가 있는 듯하다. 박정희가 당시 사전 점검한 국제회의는 아스팍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PATA) 총회였다. 그해 4월, 서울에서 열리는 PATA 제28차 총회의 워크숍이 경주 보문관광단지에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각하 분부 말씀’에 발칵 뒤집혀
이 국제회의의 유치와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박정희 정권은 그야말로 총력을 기울였다. 유신 시대 말기인 1979년 초, 갈수록 독재로 치닫던 박정희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험악하던 시기였다. 국제회의의 성공적 개최는 정권의 이미지 쇄신에 큰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박정희가 PATA 총회와 워크숍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1978년 12월에도 보문관광단지에 들러 단지 조성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한편, 국제대회 개최를 철저히 준비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보문관광단지는 PATA 워크숍이 예정되어 있던 곳이다. PATA와 이를 둘러싼 정권 차원의 관심은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 그중에서도 보문관광단지 조성 사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연합뉴스 1977년 9월 불국사 경내에서 수학여행 온 남녀 학생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
그런데 박정희가 다녀간 직후 경주를 발칵 뒤집는 일이 터졌다. 청와대에서 내려온 ‘대통령 각하 분부 말씀’에 느닷없이 ‘반월성을 발굴하고 영빈관을 지을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천년 왕성에다가 외국인 접대용 호텔을 지으라니? 난리가 날 만한 ‘끔찍한’ 지시였다. 다시 최병현 교수의 회상이다.
“그 분부 말씀은 내가 공문서를 직접 봤기 때문에 똑똑히 기억해.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었어.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알아보니 경주시장 소행이었어. 당시에는 대통령이 지방을 순시하면, 경주의 관련 기관장들이 대통령을 모시고 만찬 같은 자리를 마련해. 당시 경주시장이 김창곤씨라고 기억해. 그때 두 번째로 임명직 경주시장을 하고 있을 때야. (문화재관리국 쪽의) 민현식 경주사적관리사무소장이 당연히 참석했지. 민 소장한테 나중에 들으니 그 만찬장에서 사달이 벌어진 거야. 김창곤 시장이 엉뚱한 소리를 잘 하거든. 대통령이 기관장들한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보라고 했을 거 아냐? 한데 김창곤 시장이 그 자리에서 ‘각하,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에는 이것도 발굴하고 저것도 발굴하기로 돼 있는데, 정작 월성은 아무런 조사도 없습니다.’ 이랬다는 거야. 대통령이 그 말을 듣고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경주를 다녀간 직후에 저런 지시 사항이 내려온 거야. 그때 누가 감히 박 대통령 말을 거역해?”
하지만 월성 내부를 조사하고, 그곳에 영빈관을 지으라는 ‘대통령 분부 말씀’은 결국 유야무야됐다. 신라 천년 왕성에 5성급 호텔이 들어섰을지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 이 보도 직후 이를 읽은 최병현 선생이 몇 가지를 교정했다.
1. 민현식 경주사적관리사무소장은 '민헌식'이다.
2. 대통령이 돌아가고 난 다음 분부말씀이 내려온 것이 아니라 경주 순시 때 옆에 따라나니는 청와대 사람 누군가 지시 사항을 정리해서 바로 경주에서 알려준 것이다. 그 지시 사항을 민헌식 소장이 받아와서 나한테 보여주었는데 내가 그것을 읽어서 똑똑히 기억한다. 마치 서울로 돌아가고 난 다음에 지시가 내려온 것처럼 되어 있는 것은 잘못이다.
3. 황룡사 현장에 박정희가 나타났을 때는 가족은 없었다. 기사에 보면 일가족 다 데리고 온 듯한데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데 차에서 내릴 때 대통령 차에는 4명이 타고 있었다. 운전사와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그리고 박통이었다. 박근혜는 안 봤다. 한데 당시 보도사진을 보면 박근혜가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이 부분은 나중에 내가 다시 확인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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