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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을 논하면서 개중 하나로 박제가朴齊家(1750~1805)를 언급하면서 그가 수레 사용을 적극 주창한 점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이다.
한반도 사람들이 수레를 몰라 수레를 사용하지 않은 것 아니다. 산이 전국토 7할이었기 때문이다.
수레를 사용하려면
첫째. 지금의 고속도로 같은 도로가 구비되어야 하며
둘째, 그런 도로는 높낮이 차이가 현격히 낮아야 하고
셋째, 그런 까닭에 소백이며 태백이며 차령산맥 등지는 터널을 뚫어야 했다.
이것 없이 수레 사용 운운은 부질없는 소리라, 설혹 수레가 있다한들 도로가 없고 터널이 없는데 무슨 소용이리오?
박제가의 꿈은 그 200년 뒤에 이룩하게 되니
첫째, 일본인들이니, 그들이 만든 경인선이며 경부선하는 철도가 그것이고
둘째, 박정희니, 1970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가 그것이다.
이런 제반 사정 고려 없이 그가 어떠한 소릴 했다 해서 그를 선각자였느니 하면서 운운해서는 결코 안된다.
요즘 한국사회에서도 전후사정 고려치 아니하고 이상론만 펴는 자들이 있으니 대체로 이들을 몽상론자라 한다. (2016.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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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北學議》는 심판해야 한다.
그의 수레 권장론은 이상에 지나지 않았다.
보부상과 지게가 발달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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