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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어서 강남 땅에 왔다가 스벅 커피 한 잔 들고 봉은사를 찾았다. 추사 선생이 돌아가시기 사흘 전 썼다는 <판전> 글씨를 오랜만에 한 번 보고 싶어서였는데, 절 분위기가 꽤나 어수선해서 좀 아쉬웠다. 근데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되었다.
판전 옆, 무슨 문화관을 짓는다고 길을 냈는데 그 옆에 박힌 돌기둥 하나. 깨져서 별로 볼 것 없어보이긴 해도 일단 글자가 있으니 전공(?)을 살려 들여다보았다. 앞부분은 죄 누가 뭉개놓았는데, 뒷부분은 살아 있다.
"조선불교조계종대본산봉은본말사주지대표
소화십팔년 시월 일 건립"
소화 18년이면 1943년, 2차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그때 봉은사 주지께서 세운 돌이라.
다시 앞면을 바라본다. 햇빛에 비춰보니 언뜻언뜻 '충'자가 보이는 듯도 하고, 그 아래 잔글씨는 '육군....' 같아보인다. 알 만 하다. 그러니 뭉갰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소화 연호도 누가 손을 댄 흔적이 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본 기억이 없는데, 땅에 파묻혔다 이제야 드러난 것일지?
모를 일이지만, 그 때 그 시절을 기억하는 저 돌이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진 말아야 할 텐데.
***
2018년 9월 4일 글이다.
저 돌이 지금도 남았는지 모르겠다.
*** Editor's Note***
이른바 부끄러운 역사라 해서 저리 인멸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워진 자리에 위대함만 남는다.
역사인멸은 실상 역사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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