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부여 부소산성 발굴성과를 공개했으니 개중 특히 이목을 끄는 유물이 아래와 같은 글자를 위에서 아래로 긁어내린 백제시대 토기 파편이라.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
마지막 글자는 모양은 분명하나 자신이 없어 판독불능처리를 했거니와,
이는 내 지인들 압도적 견해가 瓦의 이체자異體字라 하거니와, 그러고 보니 나 역시 그리 보여 그를 따를 수밖에 없다.
애초엔 내가 잘못 봐서 3월 15일을 2월 15일로 오독하기도 했으니 암튼 문제의 저 글자는 다음으로 판독한다.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瓦
을사년삼월십오일모시산국작와
도합 열네 글자인 이 문장은
을사년 3월 15일에 모시산국이 만든 瓦
라는 뜻이다. 예서 우선 문제는 을사년이 언제인가이어니와 이 유물이 출토한 지점이 부소산성 궁녀사 집수시절이고 백제관련 유물이 잔뜩 쏟아짐을 근거로 사비시대 말기 645년으로 추정했으니
해당 글씨가 적히 유물 역시 백제시대 유물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하니 적어도 백제시대 유산임은 분명하다 하겠다.
다음 문제는 와瓦..이걸 흔히 기와로 풀지만 질그릇 일반을 瓦라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저에서 저 글자가 보인다 해서 그 유물을 기와로 볼 순 없다.
실제 저 글자들을 새긴 유물은 기와가 아니라 대옹大甕이라 해서 장독 종류 그릇 단지다.
그럼 모시산국牟尸山菊은 무엇인긴? 볼짝없이 이 瓦를 作한 사람 이름이다.
牟尸가 성씨요 山菊이 이름이다. 백제는 두 음절 성씨인 복성複姓을 주로 썼으니 이 경우도 그런 정황을 여실히 확인한다.
이 사람 이름은 산국山菊이다. 뜻글자다. 뭐냐? 들국화 산국화다.
따라서 저 문장은 아래와 같은 뜻이다.
을사년 3월 15일에 모시산국이 만든 질그릇
이 瓦를 저이가 作했다 하므로 모시산국은 직업적 도공陶工임을 직감한다.
내 자신은 없지만 백제인 최초로 정체가 탄로난 도공이 모시산국이다.
우리는 이와 똑같은 패턴을 이미 확인한 적이 있다. 같은 부소산성에서 90년대 초반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백제시대 금동광배.
이 저명한 광배 뒤쪽엔 못 같은 걸로 긁어 쓴 다음과 같은 글이 있으니
何多宜藏治佛
하다의장이 만든 불상
이런 뜻이다. 하다의장은 주물 장인으로 역시 何多라는 복성을 썼다. 이 하다가 한자로 표기하면 弓月이다. 활과 달..줄여서 하다가 된 것이고 이 일족 중 일부가 왜국으로 넘어간다.
何多宜藏治佛
牟尸山菊作瓦
문장 구조도 일란성 쌍둥이다.
(2020. 12. 9.)
***
이에서 시간이 흘러 조사단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한국목간학회라는 단체와 관련 학술대회를 개최키로 했다 하거니와, 그에서 발표할 내용 일부를 연구소가 미리 공개했으니, 아래가 그것이라
"부소산성 출토 7세기 명문토기는 백제 공납제도 구체적 증거"
임동근 기자 / 기사승인 : 2021-02-16 09:00:15
부여문화재연구소·한국목간학회 학술회의
"명문 14자 중 판독 안된 마지막 글자는 '대형 항아리' 지칭"
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39535249569
저 보도에 의하면 그 발표자 중 한 사람인 이병호 선생이 문제의 마지막 글자를 瓦를 물장군 瓺(장)에 해당하는 이체자異體字로 간주하면서 이르기를 모시산 사람 菊을 이를 만든 도공 이름으로 추정했다는 것이니, 도무지 이해불가 납득이해하는 주장이다.
마지막 글자는 나 역시 애초에는 판독 불능으로 친 대목이니, 그 타당성 여부야 차치하고 牟尸山菊을 모시산의 국이라고 하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2021. 2. 16)
***
마지막 글자를 瓦 이체자로 본다 했지만, 그에 대해서는 반론도 없지는 않아 기호철 선생은 이瓵[항아리] 이체자로 본다 하니 참고하기 바란다.
나아가 저걸 만든 날짜 2월 15일은 부처님 열반일이다.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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