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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일기를 보면 생선이 선물로 많이 오가는 것을 본다.
그런데, 이 생선은 어떤 경로틀 타고 와서 선물로 증여되었을까?
내륙 지방이라면 원거리 행상을 하는 상인이 들고온 것을 사다 쓰고
나머지를 다른 이에게 물물교환 격으로 선물로 보냈을까?
일기를 보면 전혀 그런 것이 아닌 것 같다.
필자는 이 생선의 공급선으로 관청을 주목한다.
이 생선은 원래 공납품으로 바닷가에서 내륙지역의 관가로 수송된 것이
어떤 어떤 이유로 사족들에게 선물로 증여되고,
그 선물이 된 생선은 다시 또 다른 사족들에게 재차, 삼차 선물로 팔려나갔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보면 각 고을에서 생선이 퍼져 나가는 모세혈관은 사족들 상호간의 선물이란 형식을 빌더라도,
그 고을까지 생선이 전해지는 대동맥 격의 생선 운반은
전혀 상인이 아니라 공납이 아니었던가?
쉽게 발해 화폐가 돌지 않던 시절 바닷가에서 생산되는 산물이 내륙지방으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관의 힘을 빌지 않으면 불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 [편집자주] ***
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다.
시장이 없으니 상인이 없었고 상인이 없으니 시장이 없었다.
오직 관 주도 물자 유통이 있었을 뿐이다.
이는 객점 역시 마찬가지라 여관이 발달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 룸싸롱은 오리엔트 환상특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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