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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일기를 보면,
17세기까지도 우리나라는 소위 선물경제라고 부르는 물물교환 네트워크가 주류이고,
시장과 화폐의 발달은 극히 미미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사족들끼리의 물물교환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물물교환이 시작되는 물품 공급의 매우 중요한 한 축이 바로 관청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공납 등으로 받아 놓은 물품을 사족들에게 공급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흔히 칭념이라는 말을 써놓기도 하지만,
그런 말 없이 목사가 보냈다, 관찰사가 보냈다 하는 물품 대부분이 그런 것이고,
무시로 관에 이 물품 저 물품 요구하여 얻어 쓰는 모습이
조선시대 여러 일기에서 보인다.
쉽게 말해 사족들 사이에 물물 교환 중요한 공급처였던 것은 관청으로,
물건의 공급이 상인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왠만한 향촌에는 상인을 통한 물품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18세기 이전에는 화폐도 작동하지 않고, 시장도 거의 없는 것이 되겠다.
흥미로운 것은 사족들끼리 물건을 주고 받을 때는
선물과 답사라는 모양새를 갖추어 저 사람이 내게 이걸 보내면
나도 뭔가 하나 들려 갚는 모양이 될 터인데,
이렇게 관청에서 얻어 쓰는 물건은
도대체 그 사족은 뭘로 갚는다는 말인가?
일기를 여럿 봐도 도대체 관에서 얻어 쓰는 물건의
댓가가 될 만한 것이 안 보여 하나 적어둔다.
*** [편집자주] ***
시장? 없다니깐? 몇 개 보이는 것을 두고서 침소봉대해 조선에 시장이 활성화했니 하는 헛소리 천지다.
국제시장? 그딴 게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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