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작품을 소개할 적에 항용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가 해제를 어느 부분에 어느 만큼 하느냐가 관건으로 대두한다. 책머리에 너무 자세한 내용을 깊이 있게 실으면 독자가 진을 빼기 마련이다. 그리고 해당 텍스트가 어느 정도 국내 독서계에 익숙한지도 고려해야 한다.
《논어》 《맹자》를 번역하면서 서두에 해제를 잔뜩 붙일 필요는 없다. 이 《샤나메》는 보니 페르시아 중세 문학인가 보다. 그러고 이 작품 이름조차 들어본 사람도 거의 없으리라..내가 그런데 당신들은 오죽하겠는가?
한데 이 역본은 이런 생소한 작품을 목차에서 보듯이 느닷없이 본문으로 직행한다. 이 방식 좋지 않다.
이런 생소한 작품은 책머리에 해당 작품을 아주 간단히 소개하는 글을 한두 페이지 분량으로 소개함으로써 생소함을 없앤 다음, 본문으로 들어가고 책 말미에다가 깊이 있는 해설을 실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14.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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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이 방식도 실제 적용은 쉽지 아니해서, 시리즈물은 예외없이 편집 방침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라, 그를 준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작동하는 까닭이다.
합리적 변용을 이야기하나, 그 또한 쉽지는 아니하다.
그럼에도 본문 시작 전에 해제라는 이름으로 논문을 방불하는 방식의 해제는 문제가 적지 않다. 그거 읽다가 진 다 빼버리기 십상인 까닭이다.
해당 언어권 독자를 상정해, 그 작품이 초역이거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일 때는 내가 추천한 저런 방식을 생각해야 한다.
같은 한문고전이라 해도, 논어 맹자 노자 장자를 길게 앞대가리에다 따로 설명할 이유는 없다. 반면 《율료자》니 《갈관자》니 하는 고전은 매우 생소한 문헌인 까닭에 이런 때는 앞대가리에다가 문화재 안내판 같은 간단한 소개글을 붙이고 책 말미에다가 이를 심층으로 분석한 글을 붙이는 방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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