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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소나무에는 국경도, 국적도 없다

by taeshik.kim 2018.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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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선교장 송림(松林)>

 

<기자수첩> 소나무에는 국경도, 국적도 없다

2014/01/03 18:05 송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문화재 보수 현장을 소재로 하는 사건마다 거의 늘 빠지지 않는 논리가 국수주의다. 우리 것이 마냥 최고로 좋다는 믿음이 지나쳐 우리의 문화재 현장에 들어가는 재료는 반드시 국산이어야만 한다는 믿음은 외국산에 대한 혐오로 발전하곤 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 자주 본다.

 

그런 극명한 보기가 단청 훼손으로 촉발한 숭례문 복구 부실논란 사건이다. 총체적 복구 부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로 외국산, 특히 일본산 아교나 안료 사용을 들었다. 국보 1호인 우리의 자존심 숭례문을 복구하는데 어찌 일본산을 쓸 수가 있느냐는 질타가 쏟아진 것이다.

 

숭례문 복원에 쓰인 목재 중에서도 기둥이나 들보처럼 덩치가 큰 주축 건축 소재인 대경목(大梗木)이 국산이 아니라 러시아산이라는 의혹에도 이런 국수주의의 짙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물론 애초에 사용하기로 한 삼척 준경묘의 이른바 금강송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고, 이보다 헐값이라는 러시아산을 썼다면 이는 국민에 대한 믿음을 배신한 중대 범죄 행위이며, 그에 대한 중벌은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알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과 관련해 만약에 러시아산을 썼다면 지금의 숭례문을 헐어버리고 새로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느니, 국산 금강송은 잘 건조하면 균열 현상도 발생하지 않는 세계 최고의 소나무이며, 러시아산을 비롯한 여타 외국산 소나무에 견주어 가장 훌륭한 건축 소재라는 주장이 나오고, 더구나 그런 말이 정답인 것처럼 통용되는 현상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내에서 흔히 '금강송'으로 통하는 소나무는 동해안 일대 백두대간을 따라 자라는 육송을 지칭하는 비학술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금강송이 좋은 목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세계 최고의 목재일 수는 없다. 간단히 말해 금강송은 좋은 목재 중 하나인 것이다.

 

그것과 바꿔치기했다는 의혹이 이는 러시아산 소나무만 해도 유라시아 대륙을 걸치는 그 광활한 대륙의 어느 곳에서 생산된 소나무인지에 따라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 소나무가 혹여 두만강 건너편 연해주산이라면 그 소나무 역시 이른바 금강송의 일종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경주 경덕왕릉 솔숲>

 

그리고 설혹 러시아 다른 지역 소나무라 해서, 그리고 그 가격이 국내산 금강송보다 훨씬 싸다 해서 품질 또한 국산보다 저급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이 분야 전문가들은 코웃음을 친다. 나아가 금강송은 충분히 건조하면 건물을 세워도 갈라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적어도 고건축학자나 식물학자들에게는 비웃음을 산다.

 

우리 소나무가 세계에서 제일 좋고, 전통건축에서 그런 소나무만 썼다면 종묘와 창덕궁을 비롯해 적어도 수백 년을 버틴 전통건축물의 기둥과 들보가 곳곳에서 균열이 간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금강송이라 해서 갈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산 소나무 중에서도 전문가들은‘더글러스 소나무’라 불리는 캐나다산 소나무는 건축재료로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실제로 이 소나무는 광화문 복원에도 쓰였다. 하지만 광화문에 캐나다산 소나무가 쓰였다고 해서 그것이 부끄럽다고 저 건물을 헐어내고 국산 소나무로만 채운 새 건물을 지을 수는 없다.

 

설혹 숭례문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인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다고 하자. 그것은 애초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므로 그 행위가 범죄행위가 될지언정, 그렇기에 그것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 논리는 될 수가 없다.

 

숭례문, 광화문이 대한민국 문화유산이라는 국적이 부여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무가 국적을 갖는 것은 아니다. 소나무에는 국경도, 국적도 없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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