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서울의대 생물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올해 미국과 유럽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던 학회 세개가 연달아 취소되었습니다. 세계고고학회, 미국고고학회, 그리고 Mummy Congress. 이 중 4년에 한번 열리는 세계고고학회와 Mummy Congress는 다행히 완전취소는 아니고 내년 7월과 9월 쯤으로 연기된 상태이고, 미국고고학회는 매년 열리는 학회라 완전히 건너뛰게 되었습니다. 미국고고학회에서는 우리 연구실이 고기생충 관련 워크샵을 개최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것이 잘 안되어 개인적으로 데미지가 큽니다. 오프라인 워크샵을 온라인 워크샵으로 대체한 계획을 현재 미국고고학회와 협의 중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만사가 어지러워 졌지만 수만년 역사를 많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헤쳐온 것처럼 인류는 지금도 살아 남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 어려운 시기,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주인장 포스팅에도 나오는 "데카메론"은 유럽 중세,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 이를 피해 모인 사람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 놓은 이야기를 적어 놓은 글이다. 카뮈의 "페스트"나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유명한 저작들이지만 사실 손이 선뜻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던 엄중한 현실, 전염병이 돌고 있던 소설의 배경을 우리가 크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던 탓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사람들이 스스로의 무력함과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신死神에 대한 공포를 절감하는 그런 종류의 기억은 인류사에서 잊혀진지 오래된 것이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제7의 봉인 (The Seventh Seal).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 14세기 유럽이 배경이다. 이 영화는 영화도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하지만 21세기 들어 태어난 친구들이 한국전쟁기의 배고픔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제대로 된 전염병의 위력을 맛보지 못한 우리 세대에게도 넘지 못할 벽이 있다고 본다. 1958년 당시 관객들은 불과 10년 전 끝난 전쟁에의 기억을 되살릴수라도 있었을 것이다.
중종 19년, 1524년 당시 우리 조상들의 심정도 얼마전 대구경북지역에서 무더기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올 때와 비슷한 심정을 겪었을 것이다. 공포와 무력감. 원망과 사람들 사이의 신뢰의 단절.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심경의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방법을 모두 다 써보아도 도저히 전염병을 막지 못하자 조선 조정에서는 이런 논의가 시작된다.
"평안도에 여역癘疫이 일어 한 해가 지나도록 그치지 않아 내지內地로 전염하려 하고 거의 다 죽어 가니, 이런 재변이 일어난 것은 예전에 없던 일입니다. 의원을 보내어 치료하게 하시니 전하께서 우휼憂恤하시는 뜻은 지극하시나, 온 지경에 여역이 번져 시체가 날로 쌓이는 것은 반드시 한두 의관醫官이 구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 경기·황해도에 여역이 번져 백성이 많이 요사夭死하므로, 문종文宗께서 측은히 여겨 친히 제문祭文을 지어 조관朝官을 나누어 보내어 정결한 곳을 가려서 제단을 만들고 정한 제물을 베풀어 치제致祭하게 하시니, 여기戾氣가 그쳤습니다. 옛일에서 상고하면 예문禮文이 있고, 조종에게서 본받으면 아름다운 법이 있으니, 이제 관원을 보내어 나누어 기도하게 하여 한 도道의 백성을 위하여 부지런히 돌보는 뜻을 보이시면 더없이 다행하겠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에 의함: 중종실록 52권. 중종 19년 12월 8일 무술 3번째 기사)
여기서 말하는 여역이 번져 지냈다는 제사는 바로 "여제=厲祭"를 말하는 것이다.
지난회에서 말했던 것 처럼 "厲祭"란 유교경전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르게는 "예기"에 벌써 厲祭에 대한 기술이 있다. 하지만 유교에서 원래 이야기한 厲祭란 전염병이 일어났을 때 원귀의 작용으로 보고 제사를 바치는 그런 류의 제사는 아니었다고 본다. 이 제사의 대상은 "불특정 다수의 불쌍한 귀신"들이다. 후손의 제사를 받지 못하여 원통한 귀신들이 민간에 해를 끼칠까봐 천하만물의 주인인 천자나 제후가 하루 날을 잡아 제사를 지내주는 것이다.
종묘제례악. 신동훈 촬영.
이 불특정 다수의 불쌍한 귀신=제사를 못받아 먹는 원귀들의 목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칼에 맞아 죽은자
도적을 만나 죽은자
남에게 재물을 뺏기고 핍박당해 죽은자
남에게 처첩을 강탈당하고 죽은자
형벌을 만나 억울하게 죽은자
천재나 역질을 만나 죽은자
맹수와 독충에 해를 당해 죽은자
얼고 굶주려 죽은자
전투에서 죽은자
담이 무너져 깔려 죽은자
난산으로 죽은자
벼락맞아 죽은자
죽은뒤에 자식이 없는자 등등
이처럼 다양한 원귀들에게 제사를 지내주는 것이 厲祭였지만, 조선시대 정기적으로 지내는 여제 외에 실록에 새로 등장하여 심각하게 실행이 논의될 때는 역시 중종 19년 연간의 사례처럼 도저히 통제 안되는 역병이 돌때였던 것이다.
유럽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의 그림. 사신이 날뛰고 사람들이 쓰러져 죽는 와중에 "신이여 런던에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간절한 기도가 쓰여 있다. 전염병 앞에 무력하면 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논어를 보면,
王孫賈問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 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논어 팔일)
왕손가가 묻기를 "안방에 아첨하느니 차라리 부엌에 아첨하라" 한말은 무슨뜻입니까, 하니 공자께서는 "아닙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곳이 없습니다" 하였다.
왕이 국정을 그르쳐 혼란이 오게 되면 첫 번째 해야 할 일은 원귀에게 매달리는 일이 아니다.
공자께서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어봐야 소용이 없다. 라고 한것은 무슨 뜻일까? 먼저 그런 재액을 불러온 원인=잘못된 행동을 고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재액은 사라진다.
따라서 유교에서는 역병이 두려워 원귀에게 매달려 "살려달라는 기도"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음사=淫祀가 된다.
이처럼 유교는 인간의 행실과 선한 힘의 강복=降福이 갖는 인과관계는 긍정하지만 원귀의 저주는 긍정하지 않는 측면이 강하다. 세상은 선과 악의 힘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선한 힘이 가르치는 바를 따르지 못하면 재난으로 다스릴 뿐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상징물. 선과 악의 항쟁으로 본다는 점에서 이 종교의 세계관은 일신교의 논리와는 차이가 있다. 유교의 논리는 이런 이분법적 세계관보다 일신교에 훨씬 가깝다. 김태식기자의 기사 사진에서 전재.
종교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있으신 분은 이것은 다신교의 논리가 아니라 일신교의 논리라는 것을 직감하실 것이다.
유교 그 자체는 제사의 대상이 무수히 많아 다신교적인 것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실상을 보면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 인류사회를 수놓은 다른 일신교와 매우 비슷하다. 요약하면 동양에서 번성한 일신론적 성격이 매우 강한, 합리적인 사유에 기반한 종교가 바로 유교라고 할 것이다.
성균관 대성전. 이 안에는 공자, 공문십철, 동국 18현, 송조 6현등 유교에 큰 공이 있는 명유名儒를 제사하지만 음사도 아니고 다신교적인 제사라고도 볼 수 없다. 신동훈 촬영.
중종 19년, 실록을 살펴보면 전염병의 와중에 조선왕실이 역병을 쫒기 위해 해야 할 왕의 급무는 이렇다.
오늘날 기강이 해이한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조정이 엄숙하지 않아서 모든 일이 정립하지 못하니 나라의 위망危亡이 이로 말미암아 점점 이를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경연에 부지런히 나아가 날로 개신改新하는 학문을 더하시고, 친히 종묘에 제사하여 선조를 생각하는 정성을 높이시고, 치제致祭하여 여기癘氣를 쫓는 일을 거행하고 백성을 옮기는 기한을 늦추라는 분부를 내리시고, 공정하지 않은 시험을 파하고 고쳐 공정한 도리를 세우시고, 기강이 퇴폐한 것을 떨쳐 일으키어 국맥國脈을 세우소서. 이것은 다 오늘날의 급히 해야 할 일들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 실록: 중종실록 52권, 중종 19년 12월 8일 무술 3번째기사)
결국 지금까지 잘못한 일들이 많았으니 역병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왕이 정사를 갈고 닦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은 유교적 천인감응=天人感應으로 보자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역병을 다스리기 위해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지금, 사실 이 논의에서 주요한 포인트는 "원귀에게 제사를 지내보자"는 정도만이 실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카드가 되겠다. 여제를 드리는 것이야 말로 조선왕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선택지인 것이다.
하지만 유교 왕국의 군주인 조선왕이 원귀에게 제사를 지낼 수는 없다.
마지막 남은 카드로 원귀에게 제사를 지낼 때 지내더라도 최소한의 모양새는 갖추어야 하는것이다. 이것이 유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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