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문경시 문화예술과장, 문화예술회관장, 가은읍장 등을 역임하며 26년간 지역 문화 행정 현장에서 겪은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획 연재입니다. 지방 소멸 시대, 우리 역사 자원을 지켜낼 대안 찾기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올해 8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아래 국중박)을 찾은 관람객이 525만 명을 넘어섰다. 2025년 사상 처음으로 연간 관람객 5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도 관람객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K컬처와 한류 열풍 속에서 우리 전통문화와 문화유산을 찾는 국내외 관람객의 발걸음이 늘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소식이다.
평생을 지역 문화 행정의 최일선에서 일해온 행정가로서 이런 변화는 반갑다. 하지만 관람객 수라는 성과의 이면도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앙의 국립박물관이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동안, 정작 문화유산이 자리한 지역의 현장에서는 이를 보존하고 관리할 인력과 행정 역량이 충분한지 되묻게 되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500만 관람객, 그 숫자에 가려진 것들
관람객 500만 명이라는 성과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그 숫자 너머에서 우리 문화유산이 어디에서 발굴되고, 누가 연구·보존하며, 유물이 나온 현장은 누가 지키고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국중박이 2025년 12월 3일 발표한 '국립박물관 개관 80년, K-컬처의 중심으로 우뚝 서다'를 보면 국중박물관의 소장품은 2024년 기준 43만 8000여 점이다. 하지만 이 중 전시에 활용되는 유물은 약 4.1%, 1만 8000여 점이다. 박물관 스스로도 전시공간을 확충해 소장 유물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유물 구입 예산도 빼놓을 수 없다. 2025년 10월 22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국중박으로부터 제출받은 소장품 구입 예산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약 10년간 박물관의 유물 구입비는 연간 약 40억 원 수준이었다.
국보로 지정된 유물의 경매 시작가만 보더라도 박물관의 한 해 구입 예산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다. 2022년 간송 전형필의 후손이 국보인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과 '금동삼존불감'을 경매에 내놓았을 당시, 두 유물의 시작가는 각각 32억 원과 28억 원으로 합계 60억 원이었다. 박물관의 한 해 유물 구입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문화유산을 둘러싼 문제는 중앙의 박물관에 어떤 유물을 얼마나 확보할 것인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눈을 돌려야 할 곳은 유물이 발견되고 역사적 의미를 품은 채 자리하고 있는 지역의 현장이다.
문제는 이런 문화유산의 보존·관리 업무를 실제로 담당하는 주체가 국가에만 한정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중앙에는 유물을 확보하고 연구·전시하는 전문 역량이 모여 있는 반면, 그 유산이 나온 현장을 지속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책임은 상당 부분 지방자치단체에 남아 있다.
알맹이는 중앙으로, 관리 책임은 지방으로
필자가 26년간 문화행정에 몸담았던 경북 문경시의 사례부터 살펴보자. 문경에서 직접 문화유산 업무를 맡으며 겪은 현장에는 열악한 지방 재정과 부족한 인력으로 향토유산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적지 않았다.
1편 '알맹이 뺏긴 텅 빈 유적지, 수장고에 있긴 아까운 전문가들'에서 지적했듯, 지자체가 갖은 노력으로 예산을 확보해 유적지를 발굴·정비해 놓으면 핵심 유물, 이른바 '알맹이'는 중앙과 권역 국립박물관 수장고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덩그러니 남겨진 사적지와 껍데기 유적지의 무거운 관리 책임은 지방의 몫으로 남는다.
지방 현장의 부담이 얼마나 커졌는지는 문경시의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필자가 근무했던 문경시는 1990년 인구 12만 명 당시 지정문화유산 26점을 관리했다. 그러나 2024년 12월 말 인구가 6만 4000명으로 줄어든 사이, 관리해야 할 지정문화유산은 115점으로 늘었다.
지역의 인구와 행정 기반은 축소되는 반면, 보존·관리해야 할 문화유산은 크게 늘어난 셈이다. 인구 감소가 지정문화유산 증가의 원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행정 기반이 줄어드는 동안 관리 대상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점에서, 지방 현장이 감당해야 할 부담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경의 사례만으로 모든 지방자치단체의 현실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지역마다 문화유산의 규모와 행정 조직, 재정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지역에서 직접 문화유산 행정을 담당했던 경험은,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정비하는 일과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히 숫자가 늘어난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과거의 국가유산 관리가 유물의 외형을 보호하는 '점 단위의 평면적 관리'였다면, 이제는 유물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과 조성자, 재질 연구, 보존 방법, 역사적 교훈과 스토리텔링까지 살펴야 하는 '입체적 관리'의 시대로 변했다.
특히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유산뿐 아니라 지역이 보존할 가치가 있는 비지정 향토유산까지 조사하고 관리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지방정부의 업무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유산은 늘었는데, 지킬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이를 담당할 전문인력은 충분할까. 유사 직종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도서관법은 도서관 면적과 인구수에 따라 사서의 최소 배치 인원을 법률과 시행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도 기록물관리기관의 전체 정원 가운데 4분의 1 이상을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으로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박물관·미술관의 경우에도 등록 요건으로 학예사 자격과 인력 기준을 두고 있다.
문화유산 행정은 어떨까. 현행법에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유산 관리 전문인력을 두도록 한 규정은 있다. 그러나 지자체의 문화유산 업무를 담당하는 학예연구직 공무원을 인구나 문화유산 규모 등에 따라 몇 명씩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한 구체적인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다. 박물관·미술관의 학예사처럼 일정 규모에 따른 의무 배치 기준이 별도로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즉, 지자체의 문화유산 행정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얼마나 확보할 것인지는 상당 부분 각 지자체의 조직과 인력 운용에 맡겨져 있다. 문화유산의 규모와 업무량이 늘어나더라도 그에 맞춰 학예연구직을 반드시 충원해야 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셈이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제도가 '문화유산전담관'이다. 2023년 당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유산 보존·관리를 담당할 전담관을 지정·운영하도록 관련 제도를 마련했다.
하지만 전담관 지정이 곧 전문인력 확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담관과 함께 학예연구직을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한 별도의 기준이 마련된 것도 아니다. 전담부서 설치 역시 지자체가 노력하도록 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현재의 전담관 제도만으로 지방 문화유산 행정의 전문인력 부족 문제까지 해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담관이라는 직함을 부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문화유산 업무를 수행할 전문인력을 어떻게 확보하고 지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전담관 지정만으로 현장이 달라질까
실제 현장에서 문화유산 업무를 담당하는 학예연구직의 업무 범위는 넓다. 문화자원경영연구소가 2024년 10월 발간한 <유산학 연구>에 따르면, 2023년 4월 기준 경상북도 전체 시·군 본청에서 문화유산 업무를 전담하는 학예연구사는 50명 남짓이다. 이들은 유산의 지정과 관리뿐 아니라 생생문화유산사업, 향교·서원 활용사업, 고택·종갓집 활용사업 등 각종 문화유산 관련 사업의 기획과 운영까지 맡고 있다.
여기에 현상변경 허가, 매장문화유산 관련 업무, 도난 유산 추적, 환수 유산 관리, 학술 용역, 안내판 설치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업무도 더해진다. 한정된 인력으로 문화유산의 보존·관리와 각종 사업을 함께 수행해야 하는 것이 지방 문화유산 행정의 현실이다.
정영수 프라임전략연구원 대표가 지난 9월 17일 열린 제5회 국가유산포럼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2월 31일 기준 전체 국가지정·등록유산 중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비중은 16.7%였다. 반면 지자체 위임 관리가 34.9%, 법인 및 민간 단체 위임 관리가 35.7%로 집계됐다. 숫자만 놓고 봐도 국가가 직접 관리하지 않는 유산이 훨씬 많다는 뜻이다. 그 무게를 실제 현장에서 누가 감당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지자체 담당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 면접(FGI)에서도 과도한 업무량과 복잡한 행정 절차, 턱없이 부족한 전문인력 등이 문화유산 행정을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현장의 목소리를 숫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지역의 유산이 사라지면 지역도 사라진다
중앙의 박물관이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동안 지역에서는 문화유산을 직접 관리하는 행정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무관심과 열악한 재정 속에 전담 인력마저 배정되지 못한 향토유산은 적절한 보존의 손길을 받지 못한 채 훼손되고,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경제적 자산이 사라지면 지역의 매력도 함께 떨어질 수 있다. 지역의 쇠퇴는 다시 문화유산을 돌볼 행정 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문화유산의 방치와 지역 쇠퇴가 서로 영향을 주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라도 현장의 관리 역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
문화유산의 보존은 중앙과 지방 어느 한쪽의 책임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중앙은 유물을 확보하고 연구하는 역할을, 지방은 유산이 존재하는 현장을 지키고 활용하는 역할을 맡는 구조라면, 두 영역을 연결할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더 이상 문화유산 관리의 책임과 권한이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데 지방정부가 참여한다면, 그 유산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인력과 재정적 기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벼랑 끝에 선 지역 문화유산을 살려낼 근본적인 수술대 위에, 이제 현장의 묘수인 '산림청 모델(지방관서 신설)'을 제시해 본다.
3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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