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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골 학예사의 문화유산 다시보기]알맹이 뺏긴 텅 빈 유적지, 수장고에 있긴 아까운 전문가(by 엄원식)

by 서현99 2026.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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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문경시 문화예술과장, 문화예술회관장, 가은읍장 등을 역임하며 26년간 지역 문화 행정 현장에서 겪은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기획 연재의 첫 번째 글입니다. 공직에 있을 때는 차마 속 시원히 꺼내지 못했던 중앙 부처 행정의 모순을 짚고, 대한민국 국가유산의 100년 대계를 세우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총 4편에 걸쳐 국립박물관 '500만 관람객' 흥행의 이면, 무너져가는 10만 지역 향토유산의 현실, 그리고 이를 타개할 묘수인 '산림청 모델'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혁신 방안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지방 소멸 시대, 우리 역사 자원을 지켜낼 대안 찾기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산자락 아래 발굴 현장 전경 사진 문경시 동로면 노은리 천주산(천주봉) 일대에서 진행된 청자요지 학술 발굴조사 현장 전경이다. 기존에 알려진 노루미청자요지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이곳에서는 청자를 구워내던 가마(요구) 시설과 조업 집단이 거주하며 작업했던 공방지 등이 확인되었다. 화강암 풍화토 지역으로 원료 조달과 땔감 확보가 용이한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춘 곳이다 ⓒ엄원식 2026.09.26

 

나는 문경시 문화예술과장, 문화예술회관장, 가은읍장 등을 거치며 26년 동안 지역 행정의 최일선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일해온 행정가다. 현직에 몸담고 있을 때는 차마 속 시원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공직을 내려놓은 이제야 세상에 내놓는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지역에 방치된 문화유산은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지방 소멸의 시대.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의 소중한 역사 자원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뼈저린 위기감 때문이다. 부처 간의 알량한 밥그릇 싸움이나 행정 편의주의를 탓하자는 가벼운 투정이 아니다. 다가올 국가 100년 대계를 위해, 피할 수 없는 '문화유산 관리 체계의 대통합'을 제안하고자 이 연재를 시작한다.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유산은 진열장 밖에도 있다, 그러나

비판에 앞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다. 1999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지금의 용산 시대를 준비할 당시, 필요 인력에 턱없이 부족한 50여 명의 학예직만으로 짐을 꾸려야 했던 척박한 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박물관은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오늘날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문화의 자존심이자 세계적인 수준의 문화 공간으로 도약했다.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수장고와 전시실을 오가며 차가운 유물에 온기를 불어넣는 큐레이터들, 부서지고 녹슨 파편 속에서 시대의 맥락을 집요하게 캐내어 기어코 학술적 성취를 이뤄내는 학예연구관들의 숨은 땀방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 최고급 전문가 집단의 치열한 헌신 덕분에 대한민국의 문화적 역량과 국민의 문화 향유 수준이 획기적으로 높아진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랑스러운 사실이다. 우리는 이들의 열정과 전문성을 깊이 존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찬사를 잠시 접어두고 시선을 서울 용산을 벗어나 흙먼지 날리는 지역의 역사 현장으로 돌려보자.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이 항온·항습이 유지되는 진열장 안에 놓인 '동산 유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바람을 맞으며 버티는 사적지, 인구가 줄어 텅 빈 시골 마을에 덩그러니 남겨진 수많은 비지정 향토유산 역시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소중한 뿌리다.

문제는 이 뿌리를 지탱하는 행정 체계가 철저히 두 동강 나 있다는 점이다. 사적지나 전통 건축물 같은 '부동산 유산'은 국가유산청이 맡고, 그 터에서 발굴된 '동산 유물'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의 국립박물관이 가져가는 기형적인 분절 구조다. 집(터)을 관리하는 사람과 그 집 안의 가구(유물)를 관리하는 주인이 서로 다르다 보니, 지역 현장에서는 참담한 엇박자가 난다.

지자체가 수년씩 피땀 흘려 예산을 확보하고 지역의 유적지를 정비해 놓아도, 정작 그 공간의 웅장한 스토리를 증명할 핵심 유물(알맹이)은 모조리 중앙이나 해당 권역의 국립박물관 수장고로 빨려 들어간다. 출토 유물은 현지 전시가 원칙이라는 목소리는 거대 부처 앞에서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알맹이를 뺏긴 지역에는 역사적 맥락이 휘발된 '빈 터(껍데기)'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이것은 어떤 행정 이론이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26년간 문화유산 행정 최일선에서 필자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부딪혀온 변함없는 현실이다.

부처간 엇박자의 대표적 표본

노란색 유물박스에 담긴 출토 유물 사진 문경시 동로면 노은리 청자요지 발굴조사 현장에서 출토된 12~13세기 고려시대 중기의 청자 조각들이다. 특히 백화로 당초문을 장식한 장고 조각 등이 출토되어 당시 청자 생산 양상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 가마터 위주로 알려졌던 문경 지역에서 고려시대에도 독자적인 청자가 생산되었음을 명확히 증명하는 생생한 흔적들이다. ⓒ엄원식2026.09.26

 

어디 그뿐인가. 우리의 소중한 국보나 보물을 국외로 반출할 때는 마땅히 국가유산 관리의 최고 책임자인 국가유산청장의 엄격한 심의와 허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해외 유수의 기관과 먼저 전시 협약을 맺고 대대적으로 일정을 홍보한 뒤, 전시가 임박해서야 국가유산청에 반출 허가를 신청하는 관행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다.

사전에 긴밀한 협의 없이 사실상 '통보'를 해버리니, 국가유산청은 이미 국제적 약속이 끝난 사안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도장만 찍어주는 신세로 전락한다. 이는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단골로 질타를 받는 부처 간 엇박자의 대표적인 표본이다. 국가유산의 머리와 팔다리가 완전히 따로 놀고 있는 격이다.

이러한 행정의 쪼개짐은 현장 실무자들에게도 뼈아픈 고충을 안긴다. 국립박물관은 문체부 소속이고 국가유산 행정은 국가유산청 소속이다 보니, 같은 지자체 안에서 일하는 문화유산 전담 학예직과 공립박물관 학예사조차 부처의 벽에 가로막혀 유기적으로 일을 도모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다.

포상 시스템의 사각지대도 씁쓸하다. 문체부 차원의 박물관·미술관 관련 유공 표창이 내려올 때면 실내에서 근무하는 박물관 소속 학예사들이 주로 추천을 받는다. 정작 본청 소속으로 비바람을 맞으며 비지정 향토유산의 훼손을 막기 위해 궂은일을 도맡는 문화유산 담당 행정직 학예사들은 이 포상 라인에서 철저히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방의 흙먼지 속에서 국가유산은 물론, 지방유산과 지정조차 되지 않은 비지정 유산까지 온몸으로 막아내며 짊어지고 있는 현장의 학예사들은 허탈하다. 현장에서 구르는 행정직 학예사들의 절대다수가 항온·항습이 완벽히 유지되는 실내 박물관 근무를 간절히 원한다는 씁쓸한 현실 이면에는, 이처럼 불합리한 지휘 체계의 단절과 굳어버린 행정 벽이 짙게 깔려 있다.

국가적인 자원 낭비요, 직무 유기

유물은 본래 있던 공간적 배경 속에서 이야기로 엮일 때 비로소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이 된다. 지방 소멸의 위기 속에서 잘 다듬어진 지역학 스토리텔링은 관계 인구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문화 경제'의 밑천이다.

결국 이 모든 모순을 해결할 답은 명확하다. 진열장 안에 갇힌 박물관의 최고급 전문가 집단이 수장고 문을 열고 지역 현장으로 나와야 한다. 국가의 문화유산 생태계를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서는 박물관 학예 인력들의 깊이 있는 식견과 보존 기술이 지역 유적지 곳곳으로 수혈돼야 한다. 이 탁월한 전문성이 단지 박물관 내부의 유물 관리와 전시에만 머무는 것은 국가적인 자원 낭비요, 직무 유기다.

프랑스, 일본 등 문화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동산과 부동산을 가리지 않고 국가유산청 격의 단일 부처가 문화유산에 관한 모든 것을 통합 관리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국립박물관이 부처 간의 알량한 칸막이를 허물고 '국가유산청'이라는 단일한 지휘 체계 아래로 들어와야 한다.

기득권 싸움이나 행정 편의주의는 이제 과감히 접어두자. 국가 100년 대계를 위해 박물관 전문가들의 고도화된 역량이 흙먼지 날리는 현장의 사적지와 하나로 융합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은 온전한 생명력을 되찾고 지역을 살리는 힘이 될 것이다.

 

https://omn.kr/2jx4o

 

알맹이 뺏긴 텅 빈 유적지, 수장고에 있긴 아까운 전문가들

나는 문경시 문화예술과장, 문화예술회관장, 가은읍장 등을 거치며 26년 동안 지역 행정의 최일선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일해온 행정가다. 현직에 몸담고 있을 때는 차마 속 시원히 꺼내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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