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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고고학을 공부하다 보면 생각보다 달라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농촌이란 마당에는 닭이 뛰놀고 소가 하품하고 우리가 연상하는 시골 정경을 떠올리게 되겠지만 -.실제로 소는 모르겠지만 닭은 삼국시대까지도 전혀 흔히 볼 수 있는 가금이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닭을 한국에서 농경이 들어오면서 따라 들어왔다고 생각하는데 대략 야요이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닭뼈는 확실한 것이 보고되었다.
그런데 이 닭이 들어온 후에도 농가에는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고 오히려 위세품으로 사용된 정황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19세기까지도 닭은 꿩 소비를 전혀 앞지르지 못했고 이것은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닭은 일본에 최초로 도입된 야요이 시기에는 치킨용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시간을 알리는 용도, 그리고 달걀을 공급하는 용도 정도로 쓰였으며 그 외에 권력자가 아래 사람에게 하사한 위세품의 정황도 여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닭의 원거지인 한반도 역시 이른 시기에는 비슷하지 않았을까. 신라의 건국신화에 농후하게 묻어나는 닭의 흔적도 그런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 시대에는 닭이란 어쩌면 흔히 보기 어려운 위세품이었으므로 신라인 역시 건국초기에는 그런 문화적 코드로 닭을 바라본것이 아닐지.
필자의 연구실 블로그: http://shinpaleopathology.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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