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문화재청은 말이산 제13호분 발굴성과와 더불어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정비 사업」의 하나로 추진하"는 경남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성지 발굴성과를 언론을 통해 공개했거니와, 연구소가 정리해 배포한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원 왕성지 관련 보도자료 전문은 다음과 같다.
□ 경남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성지에서 건물지 14동 확인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가 지난 6월 최초로 확인한 아라가야 추정왕성지를 추가 발굴 조사한 결과, 망루‧창고‧고상건물‧수혈(竪穴, 구덩이)건물, 집수지 등, 군사시설로 보이는 건물지가 다수 발견되었다. 또한, 목책의 둘레와 설치 깊이, 토성벽 축조기법과 관련한 정보를 확인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왕성의 내부 공간구조와 가야 토성의 축조기법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발굴현장: 경남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현재 확인된 건물지는 모두 14동으로, 수혈건물지 12동과 고상건물지 2동이다. 중앙에 빈터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분포하고 있어 왕성 내부의 공간배치에 대한 의도적인 기획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지 중에는 부뚜막이 설치된 것이 있는데, 특히, 10호 건물지는 판석(板石, 쪼갠 돌)을 세워 긴네모꼴의 정교한 건물터를 조성하고, 길이 약 5m의 부뚜막을 설치하였다. 이것은 가야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구조로, 고고학뿐만 아니라 고대 건축사 연구에 있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유적 전경. 가야연구소
7호 건물지는 길이 8×6m의 대형건물지로 내부에서 다수의 쇠화살촉(철촉, 鐵鏃)과 작은 칼(소도자, 小刀子), 말발걸이(등자, 鐙子) 등이 발견되었는데, 조리시설이 없는 것으로 보아 창고로 추정된다.
이밖에 다른 수혈건물지에서도 쇠화살촉과 쇠도끼(철부, 鐵斧), 비늘갑옷(찰갑, 札甲) 조각, 토기받침(기대, 器臺) 조각, 기호가 새겨진 손잡이잔(파수부배, 把手附杯) 등, 일반적인 집자리나 건물지에서는 출토되지 않는 유물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수혈건물지들은 철제무구로 무장한 군사집단이 왕성을 방어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거주하였던 시설로 추정된다.
유적 전경. 가야연구소
고상건물지는 망루와 대형건물지가 발견되었다. 망루(望樓)는 규모 4.5×4.5m이며, 기둥구멍의 지름과 깊이가 약 1m인 점으로 보아, 상당한 높이의 시설로 추정된다. 대형의 고상건물지는 규모 약 30×6m로, 지금까지 알려진 가야지역 고상건물지 중에서는 상당히 큰 규모다.
* 고상건물: 바닥을 땅 위나 물 위에 높게 설치한 건물
* 망루(望樓): 높은 장소에서 사방을 살펴볼 수 있도록 설치한 건물
고상건물지. 가야연구소
이처럼, 토성 내부에서 일반적인 생활유적에서 확인되지 않는 무구류와 건물지가 다수 확인된 점으로 보아, 왕성지 내부에는 군사집단이 상주하였으며, 이들은 일반인과 구별되는 공간에 거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구소가 보도자료와 함께 배포한 이곳 출토 유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쇠화살촉
비늘갑옷편
기대편
뚜껑
아라가야 추정 왕성터 발굴성과는 실은 언론에서는 철저히 묻혔으니, 다름 아닌 말이산 13호분 출토 별자리 그림이 워낙이나 강렬한 인상을 준 까닭이었다. 실제 어제 석간 문화일보 이래 오늘자 조간신문까지 보도를 보면 모조리 별자리 암각화 발견을 관련 원색 사진 게재와 더불어 대서특필하면서, 아라가야 추정 왕궁터 발굴성과는 아주 언급이 없거나, 뒤에 간략한 한두 줄 걸쳤을 뿐이다.
이 때문에 가야연구소에서는 무척이나 이런 보도행태가 섭섭할 줄로 아나, 이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저 넓은 땅 제아무리 파제껴도 언론이 좋아하는 그림은 따로 있기 마련이라, 그 왕궁터 발굴이 주는 인상적인 대목, 다시 말해 언론의 관심을 확 끌 만한 대목은 없었다.
아라가야 왕궁 성벽
돌이켜 보면 이는 이 왕궁터 발굴의 가장 큰 묘미라 할 수 있는 대목을 이미 빼먹은 까닭이다. 이 왕궁터 발굴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아라가야 왕궁터 확인 혹은 그럴 만한 고고학적 근거 확보다. 한데 이미 이 대목은 지난 6월 다름 아닌 가야연구소에서 빼먹고 말았다. 당시 가야연구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아라가야 왕궁터로 지목되는 곳을 찾아냈다는 내용을 써먹어버렸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구미를 확 댕기는 성과는 딴 게 없다. 추정을 넘어 확신하는 단계의 증거들을 내놓는 길밖에 없다.
아라가야 왕궁 성벽
그렇다면 지난 6월 1차 발표 이후 이날까지 고고학적 추가 발굴성과는 어땠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보도자료의 관점 혹은 강조 문제가 등장한다. 가야연구소 보도자료를 검토하면 망루와 대형 건물지가 대표하는 고상건물지 발굴성과에 가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망루(望樓)는 규모 4.5×4.5m이며, 기둥 구멍의 지름과 깊이가 약 1m인 점으로 보아, 상당한 높이의 시설로 추정된다. 대형의 고상건물지는 규모 약 30×6m로, 지금까지 알려진 가야지역 고상건물지 중에서는 상당히 큰 규모다"는 것이다.
길이 30미터 이상 가는 건물과 상당한 위엄을 갖춘 망루까지?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 추정왕궁터 발굴현장은 내가 직접 갔다. 말이산 13호분 발굴현장에 들렀다가 나는 곧장 이 현장으로 갔다. 가서 보니, 무엇보다 성벽 규모가 놀랍기 짝이 없었다. 나는 풍납토성을 보는 줄 알았다. 그만큼 이 성곽은 규모가 컸다. 단순히 규모만이 아니라 그 축조수법을 보니, 완연한 풍납토성 재판이었다. 풍납토성과 축조기법이 상당히 닮았을 뿐만 아니라, 그 규모도 엄청 났다. 이것이 왕성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성벽 판축 양상
고고학적 증거로 볼 때 이 추정 왕궁지는 왕궁임에 틀림없었다. 게임 셋이다. 끝났다. 지금까지 전연 알 수 없었고, 그 흔적조차 짐작도 어려웠던 아라가야 왕궁이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가야연구소가 내어놓았어야 할 보도자료 제목은 예컨대 다음과 같아야 했다.
"아라가야 왕궁 찾았다!"
뭐 고고학도 학문이랍시고, 또, 그렇다는 결정적인 근거가 아직은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심한다는 취지로 저리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보 등신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저걸 아라가야 왕궁이 아니라 하겠는가? 왕궁 말고는 있을 수가 없다.
천오백년이나 미궁에 쳐박힌 아라가야 왕궁을 찾아놓고도 그렇다는 말도 못하고 '추정'이니 해서 온갖 빠져나갈 구멍은 다 마련해 놓으니, 누가 이 발굴성과를 언급해주겠는가? 왕궁을 확정했다는 언급은 어디에도 없이 고작 무기를 찾았니, 토기 쪼가리 몇 개 찾았니 하는데 누가 쳐다본단 말인가?
뭐, 가야고고학이 홍길동이란 말인가? 왕궁을 보고도 왕궁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라는 말인가?
아라가야 왕궁 성벽 바깥면
20세기 한국 역사고고학 최대 발굴이 풍납토성이라면, 21세기 최고 발굴은 아라가야 왕궁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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