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숙권이 패관잡기에서 정리한 황당선荒唐船 표류 사건은 명종실록에도 보이는데,
그 1권 명종 즉위년 8월 2일 임진 두 번째 기사 1545년 명 가정嘉靖 24년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다.
전라도 관찰사 심광언沈光彦의 계본에 이르기를
"7월 22일 중국 배들이 녹도鹿島 바깥쪽에 정박하고 있는 것을 만호 장명우張明遇가 이들이 바로 왜인이라고 해서 즉시 군사를 몰아 가서는 92명을 참획한 뒤에 그들이 애걸함에 따라 사로잡은 자가 또한 282명이나 됩니다.
전 현감인 상인喪人 유충정柳忠貞이 덧널[槨]을 만들 판자를 구하러 역시 이곳[녹도-인용자]에 당도했다가 의복과 식량을 빼앗기고는 힘을 합해 서로 싸웠습니다.
율현栗峴 권관權管인 강희姜僖는 배를 타고 쫓아가서 중국인 13인을 베었으며 유충정이 벤 것도 36명이니 참한 것이 148명이요, 사로잡은 이가 282명으로 총 400여 명입니다.……"
하니 [당시 영의정 윤]인경尹仁鏡이 [이 사태 수습책을 조정에서] 논의하고선 아뢰기를,
"녹도 만호 장명우는 중국인인지 왜인인지 분별하지도 않고 잘못 죽인 숫자가 많으니 그 죄는 잡아다 추고함이 마땅하고,
유충정 등 또한 모두 남의 옳지 못한 일을 본받아 했으니 추문하여 다스림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역로驛路가 피폐하니 그 도의 감사로 하여금 추고하게 하소서."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이 일은 두고두고 가뜩이나 어수선한 조선 조정을 괴롭히게 된다.
자칫 외교 문제로 비화할 조짐이 있기 때문이다.
저 사건으로 죽인 중국인이 오죽이나 많은가?
나아가 차라리 다 죽였음 문제가 덜할지도 모르겠지만, 포로로 삼은 이가 물경 282명에 달하니 말이다.
저런 식으로 조선 해변에 느닷없이 출현하는 중국인이 탄 배를 당시 황당선荒唐船이라 일컬었으니,
당선唐船이란 당나라 군대라는 말이 요즘도 있듯이 중국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가 唐이라, 중국에서 비롯하는 배는 저리 불렀고,
개중에서도 아무런 전갈이나 외교 통로도 없이 느닷없이 나타나는 배를 황당선이라 했다.
이는 훗날 더 골치가 되는 이양선異樣船에 비길 사건이다.
앞선 패관잡기 증언도 그렇고, 이곳 명종실록 증언도 그러한데, 배 1척이 표류했다는데, 도대체 저 배는 크루즈 계통인가 왜 저리 탄 사람이 많단 말인가?
어찌하면 저 시대에 400명이나 태우는 배가 건조 운영 중이었단 말인가?
배 한 척이라 했지마는 혹 선단 규모가 아닌가 싶다. 생각해 보라, 400명이나 되는 해상 집단이 바다를 헤집고 다닌다는 사실을?
저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무얼 하고 있었으며, 도대체 저 많은 군단이 무엇으로써 연명하고 다녔을까?
캐러비안 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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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숙권](4) 추가 학살을 막은 이는 중국어 군관! 그에 투영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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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숙권](4) 추가 학살을 막은 이는 중국어 군관! 그에 투영한 자신
공무원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어숙권은 분명 명종 즉위년인 1545년 발생한 황당선荒唐船 전라도 고흥 표류 사건과 그에 따른 왜적 오인으로 인한 대규모 학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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