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척불론은 성리학자들이 계속 이야기한 부분이긴 하다.
당대의 거목 유학자로 성리학의 남상을 이룬다고 평가받는 한유도 그 유명한 (논)불골표에서 척불의 뜻을 남겼고
이 글은 그 후 천여년간 유학자들이 줄곧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의 모든 척불론도 이러한 흐름의 파생이다.
그런데-.
척불론은 성리학의 주장에 분명히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조선처럼 불교의 씨를 말리라고 한 사람은 없다.
벽이단론闢異端論은 이미 맹자에서 나오는 오래된 유교의 주장이지만
이 벽이단론은 불교를 씨를 말려버리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척불론을 포함한 성리학이 국가체제교학이 된 송대 이후의 중국,
에도시대 이후의 일본에서도 불교는 여전히 살아 남은 것이다.
이 두 나라에서는 중앙정치와 사대부의 정신세계만 지배하고 있다면 성리학은 만족했다.
불교를 씨를 말리고 중들을 노예로 만들어 각종 사역에 무시로 종처럼 부리고
산으로까지 도망간 절집을 사대부들 별장처럼 쓰라고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조선초기 척불론의 양상을 우리는 그래서 심상하게 봐서는 안된다.
조선성리학이 중국이나 일본 성리학과 달리 폭주한 이면에는 바로 이러한 과격한 척불로의 폭주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고려말의 과도한 불교의 팽창, 재산 등이 불교에 대한 공격을 낳았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 번 일본이나 중국의 불교를 보기 바란다.
거기도 한국과 똑같았다.
절집도 재산이 있었고, 승려들도 성리학자들의 주장처럼 "하는 일 없이도" 잘 먹고 살았다.
유독 한국은 절집을 완전히 박살을 내고 재산 몰수에 승려들을 노예처럼 만들어 버렸는데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성리학 흥기의 결과로만 보고 간단히 처리해 버릴 수 없는 문제가 있다.
*** Editor's Note ***
이 극단하는 배척주의가 한국사회 전반을 지금도 강타하는 불신지옥주의 너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죽는다는 절박주의 원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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