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도담삼봉
한시, 계절의 노래(194)
책보다가 느낀 바 있어(觀書有感)
[宋 주희(朱熹)
반 뙈기 네모 연못
거울인양 펼쳐져서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다 함께 배회하네
묻노니 어떻게
그처럼 맑은가
원천에서 샘물이
흘러오기 때문이지
半畝方塘一鑒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
남송 주희(朱熹)는 조선시대 유학자들 사이에서 공자에 버금가는 존경을 받았다. 그가 집대성한 성리학이 퇴계와 율곡을 위시한 우리나라 선비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주희의 업적은 문학보다 철학이나 사상 부문에서 훨씬 두드러진다. 성리학을 빼고는 중국, 한국, 일본의 사상사를 논할 수 없다. 이런 연유로 중국문학사에서도 주희의 문학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주희 시를 읽어보면 그가 의외로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시인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희 시는 바로 「권학시(勸學詩)」다.(제목이 「우성(偶成)」으로도 알려져 있음)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한 순간의 세월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리. 연못 가 봄풀은 꿈도 깨지 않았는데, 섬돌 앞 오동나무 벌써 가을 소리 전하네.(小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내용 중심은 물론 배움을 강조함에 놓여 있지만 후반부 두 구만 놓고 보면 짧은 인생과 덧없는 세월을 이보다 더 선명하게 묘사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어릴 적에는 봄풀을 보고 가을 소리를 듣는다는 발상이 너무 심한 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고보니 그 또한 과장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다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이런 훈계 시가 부모님이나 선생님 잔소리 같아서 그렇게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대체로 주희의 다른 시들도 이런 잔소리 류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이데올로기가 생경하게 겉으로 드러난 현대의 선전시와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위의 시도 마찬가지다. 제목이 ‘독서유감(讀書有感)’이므로 전체 시 전개를 책 읽기 과정의 비유로 보면서, 궁극적으로는 성리(性理)의 본질을 인식하기 위한 격물(格物)의 과정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시는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비친 맑은 연못 한적한 풍경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시경(詩境)에 도달했다고 할 만하다. 거기에 제목처럼 책 읽기 과정이 흔적없이 녹아있으므로 주희는 이미 사상과 형상이 일체화한 천서(天書) 읽기의 경지에 이르렀음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주희 시는 어떤 경우에나 사상이 문학적 형상보다 앞서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물론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나 문학적 형상 속에 그의 사상이 완전히 녹아 든 작품들에까지 사상적 잣대만 들이대는 것은 문학을 과학이나 신문기사로 논단하려는 자세와 다를 바 없는 태도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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