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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의 당시 사회적 정체성을 말하자면,
이 사람은 농경에 의존하여 농사 짓고 살던 사람이 아니다.
죽을 때 가지고 있던 물건들, 그리고 여러 가지 검사결과를 종합하면
이 사람은 농사꾼이라기 보다는 사냥꾼에 더 가깝다고 보인다.
그러면 목축을 하던 사람이었을까?
지금도 알프스 산록에는 목축을 많이들 하는데 이런 목축업자의 선구가 되는 사람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사람은 목축을 하던 사람도 아니다.
왜냐 하면 외치가 활동하던 무렵에는 아직 유럽에 목축이 성립하지 않았던 때이기 때문이다.
고고학적 보고로는 유럽의 목축은 외치보다 후대에 성립하였다고 하며,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외치의 유전자 검사에서는 그가 유당불내증(lactose intolerance) 보유자로서,
우유를 먹으면 설사를 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유당불내증은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 사람에서 특히 심한 것으로
유제품을 먹으면 소화를 못시키는 것이다.
유럽인 들은 오랫동안 목축을 통해 유제품 섭취가 많아 유당을 소화시킬 수 있어,
유당불내증의 빈도가 매우 낮다.
외치가 유당불내증 유전자가 있었다는 것은 곧 그가 목축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시대의 사람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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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이야기-42] 유전자가 푼 EEF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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