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용도불명의 목활자본: 열성수교 (4)

by 신동훈 識 2025. 7. 11.
반응형

끊임없이 생산된 신숭겸 신화. 이 판본은 대정 11년에 나왔다.

 

이 장절공유사에 실린 신숭겸이 전사하는 장면은 

이전에 꽤 히트한 왕건이란 드라마에서 잘 묘사가 되었는데 

신숭겸이 왕건의 옷을 바꾸어 입고 수레를 몰며 독전하다가 

왕건이 현장에서 안전하게 몸을 피한 뒤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처럼 옷을 바꾸어 입고 전사하는 장면은 사실 

초한지의 기신의 사망장면과 아주 유사한 것으로 

고려사 등 사서에는 신숭겸과 김락이 이 전투에서 (공산전투) 격렬히 싸우다 전사했고 

왕건은 이 전투에서 간신히 살아 도주한 것으로만 되어 있지 

옷을 바꾸어 입는 장면이라던가 왕건처럼 위장하여 신숭겸이 독전하는 장면 등은 

오직 장절공유사에서만 볼 수 있는 기록이다. 

 

공산성 전투



하지만 신숭겸이 공산전투에서 왕건을 도피시키는 장면에서 순사한 것 자체는 고려사 등에 산견하는 기록으로도 부정할수 없는 상황이라 

꼼짝없이 평산신씨 가승에 전하는 이 신숭겸의 위주대사 하는 장면이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채록되어 

조선시대에도 이 장면은 그대로 받아들여져 열성수교에서도 신숭겸의 사망장면은 그대로 묘사되는것이다. 

이 장절공유사에서 고려예종과 관련된 장면은 

예종이 팔관회에서 신숭겸과 김락 두 사람이 전사하는 연극을 보고 크게 감동하여 

앞서 말한 "도이장가"라는 시를 짓고, 

(여기가 정말 중요한 장면인데)

그 후손을 등용하여 쓰게 하였다라는 점이다. 

도이장가 전승은 사실 열성수교에서 언급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으로, 

이처럼 본받을 만한 행동을 보여준 신숭겸 집안의 사람들을

그 후에 녹용하게 되었다. 라는 말로 끝을 맺게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의 서사라고 하겠다. 

이처럼 신숭겸 집안은 고려시대 예종의 도이장가가 만들어지던 시절
이미 비슷한 서사의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집안의 가승에 실었는데, 

조선시대 몇차례에 걸쳐 신숭겸의 후손은 군역과 잡역에서 빼주라는 이야기가 나오니, 

이를 그대로 흘려버릴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두어 차례 발급된 이 교서의 내용은 문중에서 그대로 보존되어 내려오다가 

한권의 책으로 묶여 "도이장가의 시퀄 (Sequel)"로 모습을 드러낸것이 

바로 열성수교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