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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용도불명의 목활자본: 열성수교 (5)

by 신동훈 識 2025.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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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비슷한 서사구조를 가진 장절공유사의 도이장가

그리고 열성수교의 교서는 

매우 유사해 보이지만 결정적 차이도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장절공유사의 도이장가는 족보에 실리고 끝이 났지만, 

열성수교의 교서는 누군가에 의해 목활자본으로 대량 인쇄되어 뿌려졌다는 점이다. 

어째서 열성수교는 따로 간추려져 이렇게 뿌려졌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한 가지 그 이유를 추정해 보자면, 

어디까지나 짐작에 불과한 것이긴 한데

필자는 이 책은 군역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증명서용으로 쓰였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에는 자신이 부당하게 군역을 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민원을 넣는 상황을 종종 보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는 선현의 후예로 

이전 선왕들 께서도 여러 차례 신숭겸 후손은 아무리 잔약해져도 다 군역과 잡역 빼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내가 군역에 들어가니 부당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한 용도로 

이 책이 인쇄되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건네어졌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물론 그 사람들을 꼭 신숭겸 후손을 모칭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조선후기가 되면 아무리 잘난 집안이라도 집안 사람들 사이에 분화가 격렬하게 일어나 

여전히 명문가 위치를 유지하는 후손이 있는 반면 

완전히 몰락하여 평민 혹은 노비로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19세기가 되면 이미 능력이 좀 되는 사람들은

모두 "유학"이 되어 군역을 요령껏 다 빠지던 시대였는데 

이 시대에 열성수교란 호적에서 "유학"으로 되지못해 군역을 빠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써 볼 만한 카드였음에 분명하다 하겠다. 

필자는 이 열성수교의 글에서 

선왕들이 신숭겸 후손들은 아무리 잔약해져도 다 빼주라고 했다는 부분,

그 후손들이 명문가이건 몰락한 집안이건 간에 다 빼주라고 했다는 부분

이 부분을 주목한다. 

이 책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무리 몰락했더라도 군역을 빼주라"는 부분 아니겠나. 

왜냐하면 이미 "유학"이 되 버린 사람들은

구차하게 이런 열성수교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군역은 이미 빠져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열성수교는 어찌 보면 신숭겸의 후손들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 아니고, 

잔약해져 군역을 꼼짝없이 받게 된 사람들

이 사람들이 환영할 만한 내용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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