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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유학으로 다시 도망간 선무군관選武軍官

by 신동훈 識 2025.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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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이야기를 보면 선무군관은 양인 중 잘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추려낸 것으로 되어 있지만, 

호적을 보면 글쎄올씨다다. 

왜냐하면 선무군관으로 직역을 받은 사람들 선계를 따라 올라가면 

대부분 유학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18세기 중엽이므로 (균역법 시행 당시) 

18세기 중엽 이전에 유학이라면 아무리 양반 끝자락이라한들 

이들이 최소한 스스로를 평민으로 의식하고 있었는가 하면 천만의 말씀일 것으로 본다. 

이들은 유학을 어거지로 붙이면서 양반 끝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망정 

스스로를 평민이라고 생각했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들 선무군관들은 균역법이 시행되면서 이전까지 부담하지 않던 군포 1필을 부담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불만이 없을 수 없으니 당시 정부에서는

이들에게 군관이라는 직역명도 붙여주고 

비록 형식적일망정 일년에 한 번씩 죄다 불러모다 취재시험도 치르고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그 전까지 군포를 부담하지 않던 이들이 졸지에 부담하게 되었으니 

불만이 없을 수 없을 것이며

이들은 이미 영조 말, 정조 즉위 초가 되면

호적에서 전부 군포를 부담하지 않는 직역(유학이나 업유, 업무 등)으로 돌아가 있었다. 

한 번 데였는데 또 데이겠는가? 

양반들의 군역 면제를 그대로 둔 한은 

선무군관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이들이 그 자리에 붙어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19세기가 되면 합법적 군역면제가 가능한 유학을 가능한 한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하여 얻으려 하였고 

그 결과 순조 연간이 되면 전체 인구 절반 이상이 군역을 면제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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