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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동학"농민"전쟁으로 돌아가보자.
19세기 말, 한국이 가지고 있던 모든 문제가 일거에 폭발한 이 전쟁은
조선후기 한국의 향촌사회에 내재한 복잡다기함을 생각하면
이 전쟁 주체를 "농민"이라 정의하는 일이
얼마나 반 학문적이고 몰 이성적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조선후기 향촌사회 주역을 "농민"으로 파악해서는
아무 것도 못 건진다.
그러니 동학"농민"전쟁 연구 수십 년에도
그 전쟁 경과를 제외하면
그 전쟁의 성격이 아직도 오리무중인 것이다.
이 전쟁의 성격이 오리무중이라는 소리는
조선후기 사회의 규명이 오리무중이라는 소리와도 같고,
구한말, 일제시대에 대한 이해도 오리무중이라는 소리와 똑같은 이야기이다.
바라건데 동학전쟁에서는 "농민"이라는 이런 모호한 용어를 제외해 버리고,
먼저 향촌사회를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어 분석하기 바란다.
지금은 저마다 성격도 다르고 이해관계도 다른 사람들을
쟁기 한 번 잡았다는 이유로 몽땅 "농민"이라고 정의해 버리는데,
일본 메이지 유신기 칼들고 설친 막말 사무라이 중에는
농민 출신도 많았지만 아무도 메이지 유신을 "농민"전쟁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점,
한 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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