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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쓴 유히가하마 유적에 대해 조금 더 써보겠다.
여기는 필자가 알기로 가마쿠라 시 해수욕장으로 안다.
그런데 가마쿠라 시대는 마냥 좋은 곳은 아니었던 모양으로
전란의 시대라 할 가마쿠라 시대에 이곳은 무사들 사이의 전란 반란이 일어나거나 하면
그 처형장으로 쓴 모양으로
이곳에서 발굴한 인골만 현재 4000 개체가 넘는다.
필자가 수십년 동안 걸쳐 모신 조선시대 인골이 200-300분 정도이니
이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인골에서는 앞서 쓴 것처럼 처형의 흔적, 동란의 흔적이 다수 나왔다.
일본사에서는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키는 최후의 전쟁이 벌어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라이벌이라 할 닛타 요시사다가
10만 병사를 이끌고 가마쿠라로 쳐들어가
그곳을 지키던 막부군을 전멸시키고 가마쿠라 막부시대를 종결지었다.
그 막부군의 병사들은 다 어디에 묻혔겠는가?
바로 여기서 나온 4000 개체 인골 안에 뒤섞여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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