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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일타사피, 벼락 같았던 어느날을 반추한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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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선친 소분을 했다.

어제 청주에 일 땜에 들린 일을 기화로 저녁 늦게 김천으로 냅다 달렸다.

청주는 서너번 갔지만 제대로 둘러본 적 없어 일을 핑계로 이곳저곳 돌아봤다.


비바람 치는 정북동토성



가는 날이 장날이라 새벽 서울을 출발할 무렵 서울은 비가 그치는 기운이 완연했으나 비구름이 나랑 같이 남하했다.

남쪽으로 갈수록 폭우로 돌변해 두어시간만에 닿은 정북동토성은 강풍까지 몰아쳤다.

정북동토성은 두 가지 점에서 나는 주목한다.

그거야 앞으로 차근차근 말할 기회가 있을터이고 우산이 소용이 없었다.

기온까지 뚝떨어졌다.

사진기는 젖어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버텼지만 여의치 않았다.

예서 진을 다 뺐다.


철당간



비가 그칠 기미가 없어 이럴 땐 우선 실내로 피신해야 한다.

청주박물관으로 향하다 중앙공원에 멈췄다.

주변 풍광 중에서도 내가 철당간을 본 적 없어 그곳으로 향했다.

이 당간은 안성의 어느 사찰 당간과 더불어 당간 자체가 남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비 쫄딱 맞으며 그걸 촬영했다.

보호각 안으로 뛰어들어 명문까지 촬영하는데 비가 렌즈 보호막을 들이쳤다.

그걸 수건으로 연신 닦아내며 촬영했다.

그러곤 청주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윤성용 관장은 직전에 국박 연구부장으로 영전하고 지금은 관장 공석이라 이곳에서만 두시간을 머물며 실내 유물을 촬영했다.

하지만 삼십분이 지나지 않아 녹초가 되고 말았다.


대청댐



이래저래 오전을 보내곤 대강 점심을 해결하곤 대청댐으로 향했다.
비도 그치더라.

청주시내서 사십분가량 소요되더라.

나는 언젠가부턴 풍광 혹은 자연유산으로 관심분야가 옮겨갔다.

그리고 소위 산업유산도 문화재로 포섭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한 상태다.


대청댐을 뒤로하고



어느 소개글을 보니 대청댐 인근 현암사인지 무슨 절에 오르면 댐이 한 눈에 내려보인다 해서 내비에 이걸 찍고 그곳으로 향했다.

한데 이 절은 댐에서 암벽길을 따라 삼십분 정도를 등반해야 하더라.
오르는데 다리가 후달거렸다.

올라 마침내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대청호가 정말로 한눈에 들어오더라.

아주 이쁜 여식이 빼딱구두 신은 어머니를 모시고 대웅전에서 기도하고 나오는 모습을 목도했다.

잠깐 인사를 나누는데 그 모녀가 그리도 아름답게 보일수가 없더라.
뒤켠에서 주지 스님과 나누는 대화가 설핏 들린다.

저 처자가 캐나다 유학을 떠난단다.

그래서 어머니 모시고 이곳에 왔단다.

이를 뒤로하고 절을 내려오니 댐 전망대다.

젊은 커플이 껴안고 좋아 어쩔 줄 모른다.

남자가 여자 사진을 찍어주려는데 영 아니더라.

할 수 없이 폰카 내가 뺏어 두 사람을 담아줬더니 연신 사진이 너무 좋다 난리다.

이런 곳에선 이리이리 애인 담으라는 말 한마디 해주고 다시 시내를 향했다.

오른쪽으로 청남대 이정표가 보여 그곳도 가봤으면 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야행현장으로



이러저러해서 그런대로 정한 일정까지 마무리하고 김천으로 떠났다.

어제 보고들은 바가 어떤 형태로 김태식 안에서 가공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하나로 끝나진 않을테요 가지에 가지를 치리라.

(2016. 8. 27)


***

왜 저리 요란스레 살았을까 가끔은 나 자신을 연민한다.

더구나 저 무렵은 나는 해직 시절이었다.

저 날 왜 저랬는지 논급이 없는데 저때 청주문화재야행이라 나는 그 평가단으로 현지 실사를 갔다.

7년이 흐른 지금, 올해도 저 비슷한 일을 하는 중이라 송파랑 수원을 다녀왔으며 아마도 마지막 한 군데를 더 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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