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억령(林億齡, 1496~1568) 〈식영정제영(息影亭題詠)〉
식영정 앞. 현재는 광주호가 조성된 상태다.
원문
息影亭題咏 石川林億齡
溶溶嶺上雲,纔出而還斂。無事孰如雲?相看兩不厭。
右瑞石閑雲。
古峽斜陽裡,蒼龍噴水銀。囊中如可拾,欲寄熱中人。
右蒼溪白波。
吾方憑水檻,鷺亦立沙灘。白髮雖相似,吾閒鷺不閒。
右水檻觀魚。
有陰皆可息,何地不宜苽?細雨荷鋤立,蕭蕭沾綠蓑。
右陽坡種苽。
秋山吐凉月,中夜掛庭梧。鳳鳥何時至?吾今命矣夫。
右碧梧凉月。
萬逕人皆絶,蒼松盖盡傾。無風時落片,孤鶴夢初驚。
右蒼松晴雪。
雨洗石無垢,霜侵松有聲。此翁猶取適,不是釣周人。
右釣坮雙松。
澄湫平少浪,飛閣望如船。明月吹長笛,潛蛟不得眠。
右環碧靈湫。
明月蒼松下,孤舟繫釣磯。沙頭雙白鷺,爭拂酒筵飛。
右松潭泛舟。
礙日松爲盖,榰頤石作床。蕭然出塵世,六月裌衣凉。
右石亭納凉。
孤煙生野店,漠漠帶山腰。遙想松間鶴,驚飛不下巢。
右鶴洞暮煙。
牧童倒騎牛,平郊細雨裡。行人問酒家,短笛山村指。
右平郊牧笛。
深峽橫沙路,孤村照夕曛。一笻潭底影,雙眼嶺頭雲。
右短橋歸僧。
溪邊沙皎皎,沙上鴨娟娟。海客忘機久,松間相對眠。
右白沙睡鴨。
蒼石水中央,夕陽明滅處。鸕鶿驚路人,飛向靈湫去。
右鸕鷀岩。
誰把中書物,今於山澗栽?仙粧明水底,魚鳥亦驚猜。
右紫薇灘。
石逕雲裡小,桃花雨前齊。更添今日寂,正似昔人迷。
右桃花逕。
晴沙明似雪,細草軟勝綿。中有白頭叟,閑隨黃犢眠。
右芳草洲。
白露凝仙掌,淸風動麝臍。微詩可以削,妙語有濂溪。
右芙蓉塘。
蒼溪小洞天,明月淸風裡。時下羽衣翁,不知何道士。
右仙遊洞。
庚寅暮春,不肖後孫奉錫謹揭。
식영정 인근 환벽당
번역
식영정 제영 息影亭題咏
석천 임억령 石川林億齡
두둥실 떠도는 산마루의 저 구름
방금 생겨나더니 도로 걷히었네.
하릴없을 땐 무엇이 구름만 할까나
서로 마주 볼 뿐 싫증 내지 않는다오
溶溶嶺上雲, 纔出而還斂. 無事孰如雲, 相看兩不厭.
이는 서석산에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을 읊은 것이다.
속세와 다른 골짜기 석양빛 물들었고
창룡 같은 계곡은 수은을 내뿜는구나
물방울 주머니에 주워 담을 수 있다면
더위에 지친 사람에게 보내고 싶어라
古峽斜陽裡, 蒼龍噴水銀. 囊中如可拾, 欲寄熱中人.
이는 창계 흰 물결을 읊은 것이다.
이내 몸 물가 난간에 기대어 섰더니
해오라기란 놈도 모래톱에 서 있구나
머리털 흰 것으로야 서로가 닮았지만
나 한가한데 해오라긴 바쁘기만 하네
吾方憑水檻, 鷺亦立沙灘. 白髮雖相似, 吾閒鷺不閒.
이는 물가 난간에서 물고기 구경한 것을 읊은 것이다.
그늘 드리우면 어디든 쉴 만한데
어느 땅인들 오이를 심지 못하리
이슬비에 호미 들고 서 있노라니
조록조록 푸른 도롱이 적신다네
有陰皆可息, 何地不宜苽. 細雨荷鋤立, 蕭蕭沾綠蓑.
이는 양지바른 언덕에 오이 심기를 읊은 것이다.
가을 산이 시원한 달을 토해 내어
한밤중 뜨락 오동나무에 걸렸도다
봉황은 언제쯤 여기에 날아들까요
이내 몸 지금의 운명에 달렸겠지요
秋山吐凉月, 中夜掛庭梧. 鳳鳥何時至, 吾今命矣夫.
이는 벽오동에 걸린 가을 달을 읊은 것이다.
길이란 길은 남김없이 인적이 끊겼고
푸른 소나무는 거의 모두 기울었도다
바람이 없이 무시로 눈덩이 떨어지니
학 한 마리 지금 막 꿈에서 깨었다네
萬逕人皆絶, 蒼松盖盡傾. 無風時落片, 孤鶴夢初驚
이는 푸른 솔밭에 눈이 그친 모습을 읊은 것이다.
빗물에 씻긴 바위는 깨끗하기만 하고
서리 맞은 소나무에선 소리가 난다네
이 늙은이 외려 좋은 자리만 추구하니
미늘 없이 낚시하던 강태공 아니로다
雨洗石無垢, 霜侵松有聲. 此翁猶取適, 不是釣周人.
이는 낚시터 두 그루 소나무를 읊은 것이다.
맑디맑은 영추의 물결 참 잔잔한데
나는 듯한 누각 바라보면 배 같아라
밝은 달 아래 피리를 불고 있나니
물속에 사는 교룡 잠 못 이루겠지
澄湫平少浪, 飛閣望如船. 明月吹長笛, 潛蛟不得眠
이는 환벽당 아래 영추를 읊은 것이다.
밝은 달밤 언제나 푸른 소나무 아래
낚시하던 바위에 묶인 작은 배 한 척
모래톱 가에 있던 해오라기 한 쌍이
다투어 스쳐 가며 술자리를 빙빙 돈다
明月蒼松下, 孤舟繫釣磯. 沙頭雙白鷺, 爭拂酒筵飛.
이는 송담의 뱃놀이를 읊은 것이다.
소나무 양산 삼아 햇빛을 가리고서
바위를 평상 삼아 턱 괴고 골똘하네
티끌세상 벗어나 호젓하게 있노라니
유월 늦여름인데 겹옷도 서늘하구나
礙日松爲盖, 榰頤石作床. 蕭然出塵世, 六月裌衣凉.
이는 석정에서 더위 식히는 것을 읊은 것이다.
연기 한 줄기 들 주막에서 피어올라
어느덧 자욱하게 산허리를 감았어라
회상에 잠겼던 소나무 숲에 살던 학이
놀라 날아오르더니 둥지에 앉질 않네
孤煙生野店, 漠漠帶山腰. 遙想松間鶴, 驚飛不下巢.
이는 학동 저녁연기를 읊은 것이다.
피리 부는 목동은 소를 거꾸로 탔고
소 풀 뜯는 들판은 안개비에 젖었네
행인이 술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짤따란 피리로 산촌을 가리키누나
牧童倒騎牛, 平郊細雨裡. 行人問酒家, 短笛山村指.
이는 들판 목동 피리 소리를 읊은 것이다.
깊은 골짝엔 가로 놓인 백사장 길
외딴 마을 비치는 어스레한 석양빛.
죽장 짚은 스님은 못에 그림자 되고
두 눈은 고갯마루 구름을 바라보네
深峽橫沙路, 孤村照夕曛. 一笻潭底影, 雙眼嶺頭雲.
이는 다리를 건너 돌아가는 스님을 읊은 것이다.
개울가에 쌓인 모래 희고 깨끗하며
모래 위에 노는 오리 곱고 산뜻하다
바닷가 나그네 기심 잊은 지 오래니
솔숲에서 오리 마주하여 잠들어야지
溪邊沙皎皎, 沙上鴨娟娟. 海客忘機久, 松間相對眠.
이는 백사장에서 조는 오리를 읊은 것이다.
물 가운데에 푸르게 이끼 낀 바위
석양빛 받아 반짝반짝 되비치누나
길가는 나그네에 놀란 가마우지는
환벽당 아래 영추를 향해 날아간다
蒼石水中央, 夕陽明滅處. 鸕鶿驚路人, 飛向靈湫去.
이는 가마우지 바위를 읊은 것이다.
그 누가 중서성의 물건을 가져다가
오늘날 이 산골짜기에 심어놓았던가
화장한 신선이 물속에 환히 비치니
물고기며 새들도 놀라서 시샘하네
誰把中書物, 今於山澗栽. 仙粧明水底, 魚鳥亦驚猜.
이는 배롱꽃 핀 여울을 읊은 것이다.
돌길은 구름에 파묻혀 좁아졌는데
복사꽃 비에 떨어져 얌전히 깔렸네
오늘따라 더욱더 호젓하기만 하니
흡사 옛사람 길 잃었던 곳 같구나
石逕雲裡小, 桃花雨前齊. 更添今日寂, 正似昔人迷
이는 복숭아꽃 핀 오솔길을 읊은 것이다.
반짝반짝 모래는 눈처럼 밝게 빛나고
작고 어린 풀들은 솜보다 더 부드럽네
모래톱 가운데 머리 허옇게 센 늙은이
한가로이 누런 송아지 따라 졸고 있네
晴沙明似雪, 細草軟勝綿. 中有白頭叟, 閑隨黃犢眠
이는 향기로운 풀이 깔린 풀등을 읊은 것이다.
하얀 이슬이 신선의 손바닥에 맺혀있고
신선한 바람 사향노루 배꼽을 건드렸네.
어쭙잖은 시구절은 삭제해야 좋겠지만
주렴계의 〈애련설〉엔 명언이 담겨 있소.
白露凝仙掌, 淸風動麝臍. 微詩可以削, 妙語有濂溪
이는 연꽃 핀 연못을 읊은 것이다.
창계로 이어진 작은 별유동천은
밝은 달 맑은 바람 속이로구나.
지금 깃털 옷 입은 노인 있는데
어째서 도사인지 알 수가 없네.
蒼溪小洞天, 明月淸風裡. 時下羽衣翁, 不知何道士.
이는 선유동을 읊은 것이다.
경인년(1950) 3월에 불초(不肖)한 후손 임봉석(林奉錫)은 삼가 게판(揭板)한다.
해설
임억령의 문집에 실린 것과는 글자가 다른 것이 더러 있다. 임억령의 식영정기 현판과 함께 1950년 3월에 〈식영정제영〉도 판자에 새겨 함께 걸었는데, 임봉석(林奉錫)이 게판(揭板)하였다고 적혀있다. 두 현판은 같은 사람의 글씨이다. 아마도 임태우, 임봉석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글씨를 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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