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134)
저녁 더위로 연꽃 연못에서 놀다 다섯 수(暮熱遊荷池上) 중 넷째
[宋] 양만리(楊萬里, 1127 ~ 1206) / 김영문 選譯評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곧 입추인지라
남은 더위에 이르노니
어서 물러가라
야윈 매미 기운 많이
남아 있는지
석양에 소리 잦아들어도
쉼 없이 우네
也不多時便立秋, 寄聲殘暑速拘收. 瘦蟬有得許多氣, 吟落斜陽未肯休.
매미는 한 달 동안 뜨거운 사랑을 나눴을까?
거미줄에 매달린 매미 시신이 뜨거운 햇살에 말라간다.
오랜 기간 땅 속에서 살다가 짧은 이승의 삶을 마치고 허공에다 영원히 몸을 묻었다.
뜨겁던 사랑, 뜨겁던 여름도 그렇게 물러나고 있다.
이 숨 막힐 것 같은 무더위도 담담하게 망각되어 어느 순간 추억으로 변하리라.
왕가위王家衛의 명화 동사서독東邪西毒에는 ‘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술이 나온다.
‘취생몽사’를 마시면 머릿속 기억이 사라진다.
황약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번뇌가 많은 건 기억 때문이라 하더군”
구양봉은 ‘취생몽사’를 마시고 기억을 잃는다.
동사서독은 왕가위 영화의 고전이다.
왕가위 영화의 일관된 주제는 ‘무상한 세월과 어긋난 사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취생몽사’란 술은 “세월이 약이겠지요”의 홍콩 버전인 셈이다.
입추가 멀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 뜨거운 사랑이 물러나고 있다.
아직은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지만 그 지긋지긋한 집착에서도 조만간 벗어날 수 있을 터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살을 에는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우리는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망각 저편에서 이 뜨거운 여름을 간절하게 그리워하며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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