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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국통신>
제주 애월에 가면 항파두리라고, 고려시대 삼별초의 유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발밑을 가만히 보다보면 그 시절 기와나 청자 쪼가리가 보이곤 하지만, 오늘날 그래도 멀쑤룩한 면모로 전해지는 것은 1970년대 대대적으로 벌어진 보수 정화사업의 결과입니다.
그때 정권은 유달리 역사 속 영웅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국난극복, 반외세, 항쟁 관련 유적을 골라 손질하여 대내외에 보여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강화의 초지진이나 고려궁터 같은 곳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이 그때이고, 군데군데 끊기고 무너졌던 한양도성이 얼추 이어진 것도 그때입니다.
이곳 제주의 항파두리도 삼별초가 고려의 자존심을 지키며 몽골에 항거한 역사적 유적이라 해서 '복원'의 손길이 닿았습니다.
그 지나간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성터 한쪽에 있었으니 아무개가 왔다간 표시 - 기념식수들이었습니다.
알 만한 이름들이었습니다.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국무총리,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돌에 그들의 직함과 이름이 새겨질 때, 종이와 영상과 기억에 그들 스스로가 어떻게 남을지 그들은 과연, 알았을까요.
입 안이 씁쓰레해졌습니다. 아침에 마신 커피 때문이었을는지.
*** Editor's Note ***
기념식수는 해당 유산이 유전한 내력의 또 다른 증언자다.
저런 식수가 많은 데일수록 이데올로기성이 짙다.
아산 현충사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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