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서울의대 생물인류학 및 고병리학 연구실)
인류역사에서 어느 시기나 대규모 도시가 생겨나 번영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사람들이 도시라는 한정된 공간에 모여 살게 되면서 얻게 되는 이득은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가 도시로 도시로 모여들어 사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만든다-. (Stadtluft macht frei)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이 말은 유럽 중세에 외부 사람이 도시로 들어온 지 1년 1일이 지나면 자유로운 신분이 되었다는데서 만들어진 속담이라고 하지만 도시가 사람들에게 주는 이득은 이런것만 있는 것은 아닐것이다. 근대 이전 농업에 기반한 뻔한 사람들끼리의 향촌질서에서 벗어날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도시 생활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산다는 산술적인 계산 이상의 의미를 도시는 가지고 있다.
고대 및 중세 도시는 자유와 번영을 준 대신 질병과 죽음을 선사한 양면성이 있다. 사진은 중세 피렌체.
하지만 앞에서도 썼듯이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역효과도 낳았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역시 높은 인구밀도로 도시의 위생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향촌생활에서는 흔히 볼 수 없지만 도시의 성립 이후 새로운 형태의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익숙한 결핵의 경우 일종의 도시병이라고 할 수 있다. 결핵은 사람간에는 호흡기로 감염되는데 결핵의 감염률이 폭증한 것은 인류역사에서 도시화가 어느정도 진행된 다음에야 가능했다고 보는 경우가 있다.
이 외에도 대규모 도시가 발달하면서 새롭게 출현한 질병의 가능성은 몇 가지가 제시된 것이 있다.
첫째는 도시의 하수, 특히 분변이 도시 밖으로 제대로 처리 되지 않으면서 주변을 오염시켜 기생충이 감염되기 보다 쉬운 조건이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과거 대도시였던 지역을 발굴해서 토양시료를 기생충학적 검사를 해 보면 그 안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기생충란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과거 도시지역이 아니었던 발굴현장에서는 보기 힘든 경우인데 이는 근대이전 역사적으로 도회지 였던 지역의 토양은 기생충란에 심하게 오염되어 해당 기생충 감염이 보다 쉽게 이루어질 상황이었던 것을 의미한다.
유럽 중세 도시의 모습. 2층에서 오물을 던지면 아래에서 이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쓰고 다녔다. 도시 환경의 열악함은 잘 알려진 바와 같고 이는 도시민들 사이에 질병의 온상이 되었다.
다음은 대도시 유지를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거대 수리시설도 질병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장소에 모여 생활해야 하므로 대도시 주변에는 저수지, 해자, 수로, 운하 등 각종 수리 시설이 당연히 존재하게 된다. 이는 어쩌면 도시라는 인류역사의 구조물이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생충란에 오염된 도시 토양을 흐르는 하천 역시 충란에 오염되어 있었을 것이고 보면 이 하천이 모이는 해자나 저수지 등도 기생충란이 고도로 오염되어 있었을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나라 발굴현장에서 그동안 조사되었던 몇몇 고기생충학적 연구 결과를 보면 자명하다.
화왕산성의 모습. 이 산성 내부에 존재한 저수지는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에서 배출된 기생충란으로 많이 오염되어 있었다. 이 산성의 경우 전형적인 도회지 토양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아시아 각국 고대도시들 치고 이런 종류의 수리시설이 존재하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었던 이상 이는 사실 과거 어느나라나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도시의 수리시설은 잘 관리되어 별 문제가 없지만 과거 대도시의 수리시설은 십중팔구는 그 안에 차 있는 물이 썩어가고 있었을 것인데 그리 되면 당연히 도시민의 건강을 노리며 여러가지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균-기생충란들이 그 안에 가득했을 것이다.
이는 막연한 추정이 아니라 우리나라 경주 월성 해자 토양시료에 대한 기생충학적 분석 결과가 당시 얼마나 도시 주변의 수리시설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는지 그 상황을 잘 웅변해주고 있다. 이 연구는 2009년에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에 실렸었는데 그 내용은 Discovery Channel에서도 같은 해 8월 기사로 다루어진 바 있다. 그 기사 내용을 살펴 보면...
Over 2,000 years ago, residents of at least one royal palace enjoyed convenient indoor toilets, with the contents regularly transported to the stately mansion's surrounding moat, according to a recent excavation. The dig also found that the inhabitants struggled, and likely failed, to keep the waste flowing away from the palace. Yet another recent excavation at an estate in Scotland indicates moat water held spiritual and possibly even "cosmological" significance. Together, the two studies suggest ancient moats served functions that were not always related to defense. "Even if a moat was advantageous, perhaps even necessary, in defense, people living in settlements or palaces encircled by a moat might have to endure, then, the several inherent problems, such as the spread of pathogens, bad smells, the proliferation of mosquitoes, and others," concluded Dong Hoon Shin and colleagues, who excavated the moat ruins at Weolseong Palace, Korea. The palace dates back to 57 B.C. and was active during Korea's Silla Dynasty (57 B.C.-935 A.D.). Hoon Shin, a researcher at the Institute of Forensic Medicine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and his team found parasite eggs in a deep mud layer of the palace's moat. Since eggs of the parasite, Trichuris trichiura, are only shed in human feces -- many such whipworm eggs were found -- the researchers believe that "palace toilet contents were continually drained into the moat."
경주 박물관의 반월성 모형. 멀쩡해 보이지만 왕성 주변의 해자는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음에 틀림없다.
한편 거대 수리 시설은 필연적으로 말라리아와 황열병 (yellow fever)의 창궐도 야기한다.
왜냐. 고여있는 물은 모기의 번식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리시설이 확장되면 모기가 창궐하고 이에 따라 말라리아와 황열병이 함께 증가하는 현상은 인류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태국 치앙마이 고성 주변의 해자. 도시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 수많은 수리 시설들은 문명의 젖줄이자 질병의 온상이었다
도시 지역의 수리 시설에 모여 있는 막대한 양의 물은 또 다른 심각한 질병을 낳았는데 바로 주혈흡충증(schistosomiasis)이다. 주혈흡충이란 기생충의 일종으로 민물 달팽이를 중간 숙주 삼아 살다가 물속에 들어온 사람에게 감염되어 여러가지 증상을 일으키는데 아직도 전세계 적으로 수억명의 환자가 존재하고 그 중 20만명이나 되는 사람이 매년 사망할 정도이다.
이 주혈흡충증이 대규모 수리시설 정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집트 아스완댐이 완성된 후 나일강 유역에서 급증한 주혈흡충증 감염이 바로 이 댐 건설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도 고대 도시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도시 주변에 만든 대규모 수리시설때문에 동 시기 시골에 살던 사람들보다 주혈흡충에 걸릴 기회가 보다 많았을 것이다.
아스완 댐의 건설이 주혈흡중증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슬라이드. 비단 댐 건설 뿐 아니라 수리시설의 증가는 중간 숙주인 민물 달팽이의 증가로 이어져 주혈흡충증 감염률이 올라가게 된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것은-.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 앙코르 지역에 구축된 수리시설과 하천 처럼 이곳이 도시민에게 단백질원-생선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경우, 게다가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잘 익히지 않은 생선을 섭취했다면-. 당연히 여러가지 흡충류 감염에 보다 취약하게 노출 되었을 것이다.
톤레삽 호수의 축복이라는 생선 "리엘". 지금도 톤레삽 호수에서 잡히는 생선은 캄보디아 국민의 단백질 섭취의 절대량을 차지하고 있다니 왕년의 크메르 제국이라면 더 했을 것이다.
이처럼 생각나는 몇 가지 질병만 꼽아 보아도 얼마나 많은 질병이 고대 도시민에게 새롭게 발생했을지 짐작이 간다. 고대 도시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준 만큼 질병과 죽음도 함께 선사한 셈이 되겠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이 도시 생활을 택했다면 그것은 나름대로의 강력한 유인 요소가 또 있었던 셈이겠지만.
톤레삽 호수의 생선을 발효시켜 만든 프라혹 (Prahok). 날 생선을 절여 발효시켜 먹었는데 맛은 좋겠지만 기생충 감염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실제로 캄보디아에는 날생선을 먹어 걸리는 기생충 감염률이 아직 높은데 크메르 제국 시절 앙코르 주변에 산재한 수리시설과 강에서 건져 올린 생선은 풍부한 영양원이 되는 대신 크메르 사람들에게 높은 기생충 감염률을 선사했을 것이다.
각설하고-.
지금까지 살펴 본 것 처럼 우리 연구실은 근대 이전 도시생활이 옛 우리 조상들에게 가져다 준 건강상태의 변화와 질병 양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할 생각으로 고고학자와 협력하여 발굴현장을 조사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당시 도시 생활이 도시민에게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질병을 불러왔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 된것일까? 아니면 다른 나라에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일까? 이 부분을 보다 확실히 조사하기 위해 남아시아의 고대 도시지역에 계속 관심을 두고 조사를 수행해 왔다. 인도로 가서 인더스 문명 유적에 대한 발굴에 참여했던 것도 크게 보아 같은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학회에서 발표된 동남아 지역 고대 도시의 수리시설 (water management system)에 우리가 관심을 갖고 지켜본 이유 또한같은 측면이 있다.
인더스 문명 돌라비라 유적의 거대 저수지. 이 저수지 역시 이 도시의 젖줄이자 질병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이번 학회 참가로 본 연구실은 그 동안 우리나라와 인도에서만 시도했던 도시 유적 조사를 동남아시아 지역까지 확대 해 볼 수 있는 정보를 많이 획득할 수 있었고 현지 연구자와의 교류도 바야흐로 시작되었다.
아마도 이들과 함께 앞으로 우리의 연구 주제에 대해 같이 논의하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면 짧았던 학회 참석 치고는 나름 괜찮은 성과를 올린 셈이라 하겠다. (完)
P.S. 1) 이번 동남아시아 고고학회 관련 홈페이지를 아래에 링크 해 두려 한다.
동남아시아 고고학회: http://www.seameo-spafa.org/
제 3회 동남아시아 고고학회: http://www.seameo-spafa.org/conference2019/index.html
제 2회 동남아시아 고고학회 Proceeding (이 페이지 하단에 pdf가 무료 공개되어 있습니다): http://www.spafajournal.org/index.php/spafapub/issue/view/129/showToc
동남아시아 고고학회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eameo.spafa
(P.S. 2) 우리 연구실과 공동연구를 계속 진행해 온 김용준 박사가 최근 미얀마에서 작업 중이다. 이번 학회에서도 동행한 김박사는 문화재보호재단과 함께 바간에 머무르며 현지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선생의 현지 작업은 일단 올해 말까지로 아는데 더 지속될 가능성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 연구실은 금년 말 쯤에는 미얀마 현지의 고고학자 한분을 초청하여 현지 water management system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참이다. 인도처럼 동남아 지역도 우리 연구실이 뿌리 내릴 수 있는 문전옥답이 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바간에서 작업중인 김용준 박사. 페이스북 사진.
P.S. 3) 제 4회 대회때는 보다 많은 한국 학자분들을 만날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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