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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청와대 광화문 시대를 준비한 유홍준의 꺾인 꿈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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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힌 북악과 청와대.



오늘 오후 우리 공장 정치부발로 청와대 광화문 이전이라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 무산됐다는 긴급 기사가 나갔다. 아래는 그것을 종합한 정치부 기사다.  


대통령집무실 광화문 이전 보류…현정부서 사실상 무산(종합)  


이를 둘러싼 정치성이야 내가 이 자리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문 대통령 캠프에서야, 나름 자신 있다 해서, 그리고 박근혜 정부를 권위주의 정권으로 몰아부치면서, 그 대항마로, 자신들은 시민과 국민에 가까이 가는 정권임을 선전할 요량으로 청와대 광화문 이전 안을 들고 나온 것으로 아는 정도가 전부다. 


그 추진을 위해 현 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광화문시대자문위원회'라는 임시기구를 출범하는가 하면, 그 위원장에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유홍준을 앉히면서 공약 실천을 위한 가속 페달을 밟아갔다. 이 위원회가 독특한 점은 실은 '유홍준사단'을 방불할 정도로 유홍준이라는 냄새가 짙어, 그를 아는 사람들은 출범 초창기부터 우려를 표시하곤 했다. 




청와대 이전 사실상 백지화를 발표하는 유홍준.



유홍준사단이란 그가 민예총 시절 이래 문화재청장을 거쳐 지금까지 고락, 때로는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일군의 문화계 인사를 말하는 것이어니와, 그 대표격으로 문 대통령과 경남고 동기동창인 건축가 승효상이 있고, 화가 임옥상도 있으며, 이 정부 출범 이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임명된 안병욱 전 한신대 교수도 있다. 


재야에서 움직이던 이 유홍준사단이 문화권력 전면에 등장한 시기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 애초 국립중앙박물관장을 꿈꾼 유홍준은 그 꿈이 좌절하고는 호시탐탐 제도권 진입을 노리다가 마침내 문화재청장에 화려하게 입성하게 되거니와, 이를 필두로 유홍준은 저들 사단을 주로 문화재위원회에 문화재위원으로 끌어들이면서 절대문화권력을 향유하기에 이른다. 


특히 승효상의 활동은 눈부실 정도였다. 



건축가 승효상



그런 그들이 정권이 바뀌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다시 재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촛불 정국에 박근혜가 실각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유홍준사단 역시 실각한지 9년 만에 도로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 보였으니, 이들이 주무대로 활동한 공간이 바로 광화문시대자문위원회였다. 


저들 중 안병욱이 가장 먼저 재야를 이탈해 제도권으로 들어갔다. 그런 안병욱이 한중연을 장악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그 이사회 개편이었고, 그 이사진에 다름 아닌 유홍준을 끌어들인 대목은 무척이나 시사적이다. 이들은 그만큼 끈이 강고하기만 하다. 


근 10년이나 지난 유홍준이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광화문시대위원장으로 등장하자, 문화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 역시 컸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미 시대가 바뀌었다는 반론이 팽배했다. 나아가 유홍준을 잘 아는 사람들, 특히 현정권 핵심부에 있는 사람들이 유홍준을 견제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 소문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모르나, 유홍준이 본인 중심 문화권력 재편을 노린 것만은 분명하다. 그 차원에서 내가 알기로는 10년 전에 실패한 국립중앙박물관장 재입성을 노렸다는 소문도 있고, 실제 그런 움직임이 어느 정도 있었던 줄로 안다. 나아가 유홍준은 내가 아는 범위에서도 문화계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문화재청장과 국립중앙박물관장 선임에 자기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은 내가 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번번히 무산됐다. 이 정부 초대 김종진 문화재청장이 물러나고 정재숙 신임 청장이 임명되었지만, 유홍준은 다른 사람을 후임 청장으로 밀어넣으려 했다. 


그에 더불어 저 광화문시대위원회가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면서 우려를 더욱 더 산 것도 사실이다. 출범 초창기 승효상은 섣부른 개인 의견을 발표했다가 극심한 반발을 사기도 했으니, 예컨대 광화문으로 옮긴 청와대 경비실로 경복궁 안 국립고궁박물관을 사용하겠다는 발표가 그랬다. 이는 아무리 사견이라 해도 청와대를 나오겠다는 대통령을 도로 다름 아닌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으로 밀어넣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었으니, 그 발표에 문화계가 경악하고 말았다. 


사실 청와대 광화문 이전 계획 백지화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은 이미 한달 전에 결정된 사안이었다. 작년 12월 3일, 우리 공장 연합뉴스에서는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 보류 검토>라는 기사를 내보냈거니와, 정치부발로 나간 이 기사, 실은 내가 제보자다. 


정치부로 떠밀지 말고, 문화부에서 처리해버릴까 하다가, 고민 끝에 정치부에 부탁해서, 그쪽에서 추가 확인을 거쳐 저리 송고한 것이다. 당시 내가 불만이 없지 않았으니, 정치부장더러 "무산됐다고 치고 나가지 왜 흐믈흐물하고 말았냐"고 볼멘소리도 했더랬다. 하긴 내가 정치부장이라 해도, 저런 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 시점에서 확실히 말해둘 것은 저 시점에 청와대 광화문 이전 계획은 이미 백지화했다는 사실이다. 


이 백지화가 유홍준에게는 일종의 타격이다. 그에게 남은 제도권 권력은 실은 광화문시대위원회 위원장밖에 없다. 이를 발판으로 그는 화려한 재기를 꿈꾸었음에 틀림없다. 그의 꿈도 일단은 현재까지는 한풀 단단히 꺾였다고 봐야 한다. 


다만, 지금 꺾인 것이지 영원히 꺾였다고 단언하기엔 이르다. 내가 아는 유홍준은 호락호락 물러나 뒷방 늙은이로 만족할 사람은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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