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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김해 봉황동유적의 집모양토기와 말발걸이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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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보도자료를 대개 오전 9시쯤에 배포한다. 그런 문화재청발로 오늘 아침에는 <김해 봉황동 유적서 4∼5세기 가야 집모양토기 출토>라는 소식이 전해졌으니, 이를 우리 공장 문화재 담당 박상현 기자가 처리했다. 우선 기사를 송고하고선, 내가 문화재청에서 배포한 자료를 훑어봤다. 



집모양토기



기사에서도 충분히 언급되었듯이,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실시한 이번 발굴조사에서 초점은 유물 수습에 가 있으니, 저렇게 판 땅속에서 건진 유물 중에서도 집모양토기와 말발걸이 각각 1점이 이채롭다 해서, 그것을 발굴조사단이 보도자료로 만들어 자기네 성과를 선전하려 했음을 봤다. 



집모양토기 앞면


뒷면


오른쪽 옆면



왼쪽 옆면



아랫면


윗면




두 유물 모두 나름 의미가 있으니, 일본고고학계에서 수입한 용어 그대로 가형토기(家形土器)라고도 하는 집모양을 본떠 만든 토기는 박상현 기자가 정리했듯이, 이런 가야유물 중에 알려진 것이라곤 9점에 지나지 않는 희귀성이 큰 데다가 무엇보다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한 유물 역시 그보다 훨씬 적다. 그런 유물이 1점 보강이 되었으니,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셈이다. 



등자



더불어 등자(鐙子)라고도 하는 말발걸이는 말을 사람이 걸터 타거나 내릴 적에 발을 받침하는 곳이라, 이런 등자로는 그 제작 방식이 처음 알려진 유물로 드러났다는 점을 조사단이 부각하고자 했다. 


암튼 그네들이 배포한 보도자료 원문은 다음과 같다. 



금관가야 중심권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집모양토기와 말발걸이 출토

- 금관가야 왕궁지 추정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발견 -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에서 2015년부터 발굴조사 중인 금관가야 추정왕궁지인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의 집모양토기(家形土器)와 말발걸이(鐙子)가 출토되었다.


집모양토기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의 건물지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이 토기는 평면 반원형의 벽체를 가진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정면에는 네모꼴의 출입구가 설치되어 있다. 출입구는 여닫이문이 열려 있는 형태로, 출입구 아래에는 받침대가 놓여 있으며, 벽체의 한쪽 면에는 원형의 봉창(환기창)을 설치하였다. 지붕 모양은 앞부분과 뒷부분이 다른데, 앞은 박공을 가진 맞배지붕이고 뒤로 갈수록 경사져 내려가며 둥근 형태를 이룬다.

* 박공(牔栱): 맞배지붕의 측면에 삿갓형으로 붙인 건축 부재

* 맞배지붕: 건물 앞뒤에서만 지붕면이 보이고 추녀가 없으며 용마루와 내림마루만으로 구성된 지붕(책을 엎어놓은 형태)


지금까지 국내에 알려진 삼국 시대 집모양토기 대부분은 고상식(高床式, 기둥 위에 집을 만듦)의 맞배지붕 구조이다. 반면, 이번에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출토된 집모양토기는 벽체를 가진 지면식(地面式) 구조이며, 지붕모양도 앞부분은 삿갓(∧)형, 뒷부분은 원형인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처음 확인된 사례로 가야의 생활사와 건축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등자 모식도




참고로, 『삼국지』동이전에서는 삼한의 가옥을 ‘......거처는 초가집과 흙방으로 짓는데, 모양이 무덤과 같으며, 그 문이 위에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번에 출토된 집모양토기는 이 문헌사료와 유사하여 고대 가옥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김해 봉황동 유적의 소성(燒成)유구(불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는 시설) 주변에서는 철로 만든 말발걸이가 출토되었다. 이 유물은 지금까지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된 것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의 CR(Computed Radiography) 장비로 촬영한 결과, 말발걸이 고리부분(輪部)에서 접합부가 발견되었다.

* CR(Computed Radiography): 기존의 X-ray 필름 방사선 사진을 디지털 방식으로 대체한 것으로 촬영 결과를 보다 선명하고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음



등자 CR촬영



일반적으로 삼국 시대 말발걸이는 발을 거는 고리부분에 접합부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출토된 말발걸이는 고리를 둥근 형태로 연결하고, 연결부분에 각각 구멍을 뚫어 철심을 박는 ‘리벳(rivet)접합’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것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말발걸이 제작방식으로, 마구 제작기술과 제작방식 변천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5년부터 김해 봉황동 유적 추정왕궁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금관가야 중심권역의 경관을 복원하고, 사회, 경제 전반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를 축적해 가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자료의 공유와 심화 연구를 통해 가야사를 복원하고, 관련 연구를 활성화하는 기반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더불어 관련 사진과 동영상 자료까지 적절히 첨부했더라. 


다만, 이들 유물이 출토한 맥락이 전연 잡히지 않아 기사 송고 뒤 곧바로 나는 가야문화재연구소 실장 강동석한테 전화로 "이번 발굴과 관련해 좀 더 상세히 정리한 자료가 있는가" 문의한 바, 조사 중간에 보고할 만한 유물이 튀어나와 그것만 정리해서 보도자료로 보강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나는 해당 유적 위치를 엿볼 만한 지도와 관련 유적 사진을 요청한 바, 그리해서 추가 별도로 제출받은 자료가 다음 두 가지다. 



봉황동유적 위치

 




아직 도면이 작성된 상태가 아니라 하므로, 정확한 출토 맥락과 그에 따른 의미부여는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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