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지간한 배들이 사라봉 아래 제주항으로 드나듭니다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제주에서 육지로 나가는 포구로는 화북과 조천 두 군데가 유명했습니다.
부임하는 목사나 귀양온 유배객도 화북 아니면 조천으로 들어오곤 하였지요. 그 중 제주목과 좀 더 가까운 곳이 바로 화북포구였습니다.
그곳 근처에 근대 제주 제일의 풍류객으로 꼽혔던 서가이자 전각가 청탄 김광추金光秋(1905-1983) 선생이 살았던 집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아드님 이름을 따 '김석윤 가옥'이라 불리는 곳, 모처럼 나온 김에 한번 들러나보자 싶어 찾아갔습니다.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진 못했는데, 선생이 조풍각潮風閣이라 이름짓고 아꼈다는 집이 슬슬 시간에 함락당하는 것 같아 좀 아쉽더군요.
집을 둘러싼 돌담을 한 반 바퀴쯤 돌았을까, 높직한 축대 위에 그럴 듯한 나무 하나가 눈에 띕니다. 올라가 보니 우영우도 감탄할 만한 수세樹勢의 팽나무 한 그루, 그리고 비석 몇 개가 있네요.
저만치 청탄 선생의 집이 내려다보이는데, 사실 집보다도 나무에 더 감탄하게 됩니다. 슬슬 제주에도 가을이 다가오는지라 누렇게 바랜 이파리가 바닥에 쌓여가는 가운데 꿈틀거리는 등걸이 당당하기만 합니다.
주변이 집으로 꽉 찬 지금도 그러하니 예전엔 얼마나 굳세어보였을지.
이 정도면 거의 랜드마크 아니었을까 싶은데.
높은 언덕 위인지라 바람도 살짝 불어오니 옛 분들이 여기를 '청풍대'라 한 뜻을 알겠습니다.
근대 호남의 서화가 효산曉山 이광렬李光烈(1885-1966)이 쓴 비석글씨가 더욱 반갑군요. (2022.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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