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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파주 감악산 몰자비(沒字碑)를 찾아가는 길

by taeshik.kim 2019.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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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감악산 정상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주둔한 군부대로 차량을 통한 접근에 애를 먹었다. 해발 675미터 정상엔 몰자비(沒字碑)라 해서 글자 그대로 글자가 없거나 혹은 인위로 글자가 지워진 비석 하나가 우뚝 하니 서 있다. 


감악산 정상의 몰자비



비가 우뚝 선 정상엔 송신탑이 있어, KBS 송신탑이라 하지만, 아마 군부대 통신 관련 시설이 아닐까 짐작하로대, 이곳으로 통하는 산길 포장도로가 있다. 이곳은 군에서 관장하는 까닭에 차량 접근은 난관이 있어 옛날에는 각종 인맥을 동원해야 차량 접근이 가능했다. 그 옛날엔 육사교수로 재직 중이던 이재 대령, 현 국방문화재연구원장께 부탁해 이 일을 주선토록 부탁드리곤 했다. 


감악산 정상의 송신탑



이 몰자비는 입지 조건, 그 모양새로 보아 또 하나의 진흥왕 순수비임에 틀림없다. 조선후기 서예 대가요, 정계 거물인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인가가 현지에 올라 조사했을 때도 이미 단 한 글자도 읽을 수 없었다. 


올랐으니 폼은 잡아주고



나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이래 150년간 통용하던 진흥왕순수비에 대한 독법(讀法)을 일거에 일소(一掃)해 버리고 파천황을 방불하는 새로운 독법을 제시했다는 자부심이 유난히 큰 까닭에 자연 이 몰자비에 대한 관심 역시 클 수밖에 없지만, 그에 대한 전론은 아즉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조만간 그에 대한 전론을 펼 기회가 있으리라. 


3단으로 깎아 만든 몰자비 비좌



이 몰자비에서 곧잘 망각되는 현상이 비를 박은 시설이자 받침돌인 비좌(碑座)다. 비좌는 삼단으로 깎았으니 그 폼새는 북한산 비봉 진흥왕순수비의 그것과 일란성쌍둥이다. 


감악산 정상 아래까지 난 찻길. 이곳에서 대략 걸어 20분이면 정상에 닿는다.



2년전 이맘쯤, 이곳으로 오르는 찻길을 찾느라 오세윤 사진작가와 애를 먹었다. 오작가는 그 얼마 전에도 아마 경상북도가 펴낸 신라사대계에 들어갈 사진 촬영을 위해 정상으로 차를 몬 기억이 있다 했지만, 그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변은 온통 군사시설이라 내비게이션도 먹통이라 찾아 가는 데 적지 않은 애로를 감내해야 했다. 


머릿돌 이수



할 수 없이 길을 찾아 파주시 전현직 학예연구사들한테 수소문했으나, 이들 역시 확실한 길을 몰랐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통로를 찾아 들었으니, 아무리 봄 초입이라 해도 여전히 겨울이라 정상 부근 북쪽 사면은 눈판 빙판이었다. 이곳을 차량으로 찾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이정표를 사진으로 제시하거니와 저 드림기사식당을 검색해서 감악산 쪽 동네길을 찾아들어가면 된다. 





늘목휴게소. 이곳에서 감악산 쪽으로 난 동네길을 따라 들어가면 산 정상에 오른다.



이 감악산비는 그 전해에도 나는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 대표 김현종 형과 찾았거니와, 그땐 반대편 감악산 기슭 법륜사라는 사찰에 차를 대놓고는 등반했다. 그때는 꼭 감악산을 간다는 생각은 없었기에 측량을 위한 줄자를 준비해가지 않아 몰자비를 보고도 아쉬움이 컸다. 1년이 지나 오 작가와 함께한 감악산행 역시 예정에 없었지만, 이때는 줄자가 있었다. 오 작가더러 이곳 저곳 필요한 곳을 재게 하고, 그 수치를 폰에다가 저장했던 것이다. 


비석 측량





측량을 마치고는 룰루랄라 기꺼운 마음에 콧노래 부르는데, 마침 그날 진주에서 상경한 한국토지주택공사 김충배 차장과 합석하게 되어 불금을 만들었거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충배 차장이 근자에 이 몰자비를 정밀 측량하고 그 보고서를 발간했다지 않는가? 괜한 수고만 한 셈이다. 




나는 이곳을 현지조사한 60년대 황수영 박사 측량은 믿지 않으나, 김 차장 측량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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