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에서의 교육제도는 1922년에 2차 교육령으로 정립되었다.
이때 만든 시스템이 1930년대 후반(1938년)까지 가며,
대략 16년 간의 긴 기간을 이 교육제도 하에서 보내게 되었다.
요약하면, 조선의 교육제도를 소학교 6년, 고등보통학교 5년으로 만든 것인데,
이 제도는 일본의 교육제도와 달라
고등보통학교 5년을 마쳐도
일본의 제도와는 차이가 있어 바로 상급학교 진학이 힘들었다.
특히 한국에는 대학이 경성제대 딱 하나라
1930년대부터는 고등보통학교를 마친 이들이 상급학교를 찾아
일본유학의 붐이 일게 되었다.
이때 고등보통학교를 마친 이들은 바로 대학예과 진학이 되지 않아
모자란 교육제도를 보충하기 위한 과정을 일본에서 밟아야 했다.
이 2차 조선교육령이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이에 대한 분석이 국내에서는 잘 되지 않은 것 같다.
요약하면, 이 2차 조선교육령이 본토의 일본인 대상의 교육제도와 어떻게 다른가 하는 부분인데,
이 과도적 시스템이 1938년까지 지속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1920년대가 지나면 일본은 소위 교육수준 (학벌)과 생활수준이 매우 긴밀히 연동하여
가방끈이 짧으면 막노동밖에 할 것이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필자는 조선의 교육제도, 특히 2차 교육령을 1938년까지 그대로 유지한 것에는
일본 측의 악의가 있었다고 강하게 의심하는데,
실제로 이렇게 교육제도가 파행을 겪은 여파가 매우 컸다.
해방 이후 한반도에서 고급인력이 결정적으로 모자랐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2차 조선 교육령이 식민지 내내 유지되다가
중일 전쟁 이후에야 개편되었던 탓이 크다.
메이지유신의 예를 보면,
우리도 갑오경장 이후에는 근대적 교육제도로 넘어갔어야 했는데
두 세대 60년 간을 허송한 셈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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