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서 괴베클리테페 매장 흔적, 1만 1천 년 전 장송 의식에 대한 새로운 단서 제시 라는 제하 소식을 전했거니와
이 괴베클리 테페가 세계 고고학사에서 차지하는 막중한 위치야 우리 역시 하도 여러 번 다루었으니 번다함을 생략하되, 인류가 구석기 시대 수렵 채집 생활을 청산하고 대략 1만1천 년 전 신석기 시대 정주定住 생활로 돌입하는 그 초입구에 위치한다는 점에 있다 하겠다.
물론 이런 전환이 문화권별로 달라서 저쪽 유럽이나 근동 쪽에서는 가장 빠른 시기에 속한다는 점을 대서특필한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할 지점은 저 괴베클리 테페는 우리가 흔히 보는 그 장면[아래 사진이 대표적이다]으로 마주하는 단일 유적이 아니라 복합유적이라는 사실이다.

하긴 저 사진 속 장면으로도 저건 단일한 유적이 아니라 복합유적이기는 하다. 문제는 이런 군집이 괴베클리라는 언덕을 중심으로 주변에 여러 지점이 포진하며, 그 시기 또한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아니한 것도 있다.

괴베클리 테페는 현재는 터키 공화국 영내에 위치하지만, 저 유적이 등장하던 무렵에 무슨 국가 관념이 있겠는가?
오직 나와바리 관념만 있어, 여기까진 우리 공동체, 저기서부터는 다른 공동체 이 정도 나와바리 분할만 존재할 뿐이었다.





구글어스로 탐색하면 저 유적 분포가 저렇다.
물론 지금과 1만년 전 신석기 시대 초창기 기후 식생대가 같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 점에서 저 괴베클리 테페가 수상한 점은 인근으로 유프라데스 강이 흐르기는 하지만 꽤 먼 지점에 위치하며, 또 비록 현대 기준이기는 하지만 도무지 물이 나지 않는 지점이라는 사실이다.
그 시절로 돌아가서는 혹 인근으로 수풀이 우거지고, 그래서 저 어딘가에서는 샘이 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는 증거는 아직 제출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안다.
나아가 괴베클리 테페는 복합유적이라 했거니와, 앞서 제시한 여러 각도 구글어스를 보건대 그런 면모가 한 눈에 드러난다.
맨 앞에서 제시한 항공사진을 봐도 구역별로 유적이 나뉨을 알겠는데, 문제는 이것이 현대 고고학의 조사구역 문제인지, 아니면 본래 저런 양태로 시대를 달리하며 저 언덕 주변으로 여러 성격을 달리하는 구역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
하도 괴베클리 테페 소식이 자주 들려와서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고고학도들한테 물어서 모르는 데 있던가? 그래서 이리 표현한다.) 새삼스럽게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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